미국 경제학자들이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국 세탁기를 겨냥해 부과한 고율 관세는 자충수였다고 지적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발간된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시카고대의 연구 보고서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보고서는 수입 세탁기 고율 관세에 따라 공장 일자리가 늘기는 했으나 이는 소비자들이 희생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으로 타격을 받았고, 고용 창출에 예상하지 않은 비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연구진은 소비자들이 세탁기 고율 관세의 125∼225%를 비용으로 떠안았다고 분석했다. 새 관세 때문에 미국 내에서 세탁기 가격은 작년에 대당 86달러(약 9만8,000원) 정도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과 LG 등은 관세로 인한 비용상승을 상쇄하려고 가격을 인상했다. 이 과정에서 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제품인 건조기의 가격까지 덩달아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진은 세탁기와 건조기를 한 묶음으로 사는 소비자 성향을 고려해 기업들이 세탁기 관세 비용을 건조기에 나눠 전가함으로써 가격상승을 일부 은폐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은 관세에 따른 20% 가격 인상을 세탁기에만 반영하지 않고 세탁기와 건조기 가격을 모두 11.5%씩 올리는 등의 방식을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월풀도 세탁기 가격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미국 업체인 월풀은 수입 세탁기에 대한 불만을 미국 정부에 토로해 관세부과를 끌어낸 업체다. 월풀은 수입 제품에 대한 관세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자 이익을 증대하려고 가격을 인상한 것으로 분석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탁기 관세를 통해 일자리 1,800개 정도를 창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라이드에 있는 월풀 공장에 200개,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삼성 공장과 테네시주에 있는 LG 공장에서 1,600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겼다. 연구진은 이 같은 고용 창출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15억 달러 비용을 물린 끝에 끌어낸 것이라며 일자리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을 81만7,000달러로 분석했다. 세탁기 관세에 따른 미국 연방 정부의 세수증가분은 8,200만 달러로 나타났다.
NYT는 관세를 바탕으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일자리 창출 방식이 비효율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과거 연방 경기부양법(ARRA)으로 고용을 창출할 때 들인 비용은 일자리 하나에 12만5,000달러로 산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탁기 관세로 일자리 하나를 지원할 때 오바마 전 대통령은 같은 비용으로 6.5개를 지원한 셈이라고 NYT는 주장했다.
미국은 지난해 삼성, LG 등이 제작한 수입 세탁기에 대해 120만대 이하 물량에 20%, 그 이상 물량에 50% 관세를 물리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며 LG와 삼성이 미국 내에 세탁기 공장을 짓겠다는 약속을 완수할 유인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