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이 너희 아들과 아내의 목을 베러 코앞까지 왔다. 진군하자! 놈들의 더러운 피로 우리 땅의 밭고랑을 적시기 위해.’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예즈’의 1절 뒷부분이다. 가사 내용이 살벌하다. ‘문화의 나라, 프랑스’는 왜 전투적인 국가를 갖게 됐을까. 궁금한 것이 또 있다. ‘마르세유 군단의 노래’라는 뜻을 지녔는데 가사에서 정작 ‘마르세유’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프랑스 혁명정부가 국왕 루이 16세의 이름을 빌려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1792년 4월20일)한 직후인 4월25일. 프랑스 동북부 스트라스부르의 시장인 디트리히 남작은 ‘애국심을 북돋울 군가’를 애써 찾았다. 새 군가 작곡을 의뢰받은 공병 대위 클로드 로제프 루제 드 릴은 당일 밤 곡을 만들었다. 릴 대위는 이 곡에 ‘라인 군단을 위한 군가’라는 제목을 붙여 니콜라 뤼크네르 원수에게 바쳤다. 라인 방면군은 새 군가를 부르며 잘 싸웠을까. 반대로 언제나 졌다.
‘라인 군단가’를 되살린 주역은 마르세유 의용군. 국왕 부부가 오스트리아로 도망치다 붙잡히고 궁전에 유폐된 상황. 전 유럽이 혁명 파급을 차단하려고 군대를 프랑스로 보냈을 때 반전이 일어났다. 오스트리아군 사령관이 ‘혁명의 소굴인 파리를 박살 내겠다’고 위협하는 가운데 프랑스 남단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출발한 600여명의 의용군이 ‘라인 군단가’를 부르며 7월 말 파리로 들어왔다. 파리를 구출하려고 한여름 땡볕 아래 800㎞를 행군해 온 마르세유 의용군은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을 받았다.
시민들은 군가를 따라 부르며 ‘라마르세예즈’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프랑스 의용군은 1792년 초가을 발미전투에서 파리 목젖까지 쳐들어온 ‘유럽 최강’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을 무찔렀다. 프로이센군 특별행정관으로 종군했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라마르세예즈’를 부르면서 항전하는 프랑스군의 열정을 보고 ‘세계사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며 몸을 떨었다.
‘라마르세예즈’ 작곡과 관련된 인물들의 후일담이 씁쓸하다. 왕당파였던 디트리히 남작과 뤼크네르 원수는 반혁명분자로 몰려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다. 작곡가 릴 대위는 간신히 목숨을 구했으나 가난 속에 죽었다. 의도가 빗나갔는지는 몰라도 작곡가는 괴테의 탄식대로 세계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라마르세예즈’는 식민지 조선의 3·1운동에서도 불릴 만큼 저항과 자유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자유·평등·박애 만세!’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