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가 일제 강제 징용 배상과 위안부 문제 등의 정치적 현안 탓에 경색되고 있음에도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은 가파른 속도로 늘고 있다. 탈(脫)정치적 성향이 강한 10~20대 관광객 비중이 커진 데다 K팝의 위상 확대로 재방문율이 높은 ‘한류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5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방한 일본인 관광객은 전년 동월보다 27.4% 늘어난 37만5,11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2년 3월에 기록한 일본인 관광객 숫자(36만719명)을 앞지른 것으로 월별 기준 역대 최고치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의 흐름을 살펴봐도 전년 동월 대비 일본인 관광객의 증감률은 △2018년 12월 33.5% △2019년 1월 23.6% △2월 26.7% △3월 27.4% 등으로 상승 일변도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이 기간 일본으로 떠난 한국인 여행객의 증감률은 △2018년 11월 -5.5% △2018년 12월 0.4% △2019년 1월 -3.0% △2월 1.1%에 머물러 방한 일본인의 증가세와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출국 여행객의 경우 올해 3월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관광당국은 악화일로인 한일관계에도 불구하고 방한 일본인이 꾸준히 증가하는 현상의 원인으로 젊은 여행객의 비중이 확대된 점을 지목하고 있다. 중장년층 이상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정치 현안에 관심이 적은 젊은 관광객의 비중이 늘면서 전반적인 여행객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3월에는 전체 일본인 관광객 가운데 10~20대 비중이 39.8%에 불과했으나 이 수치는 올해 3월 52.1%로 치솟았다.
이들 젊은 관광객 가운데 열성적인 한류(韓流) 팬이 많다는 것도 일본 여행객 상승의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K팝 가수의 콘서트장이나 팬 이벤트 행사 등을 주로 찾는 한류 팬들은 그 특성상 한국을 2회 이상 방문하는 ‘재방문율’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의 한 관계자는 “일본 관광객 100명 가운데 70명 정도는 최소한 한 번 이상 한국에 놀러 온 경험이 있는 여행객으로 분석된다”며 “K팝과 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일본의 젊은 관광객들이 많아지면서 인바운드 시장의 안정적인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일본인 관광객이 빠른 속도로 늘면서 올해 1·4분기에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384만2,246명을 기록했다. 이는 1·4분기 기준으로 전년보다 14% 정도 늘어난 것은 물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보복이 시작되기 이전인 2016년(약 359만명)과 2017년(약 370만명)보다 높은 역대 최고 기록이다. 중국 정부가 한국행 단체관광 상품 판매 금지에 돌입한 2017년 3월 이후 분기별 외래 관광객 숫자가 최고치를 갈아치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중국이 사드 보복 조치를 완전히 해제하고 ‘유커(遊客)’의 귀환이 본격화하면 국내 인바운드 시장도 오랜 만에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흘러나온다. 관광공사 관계자는 “보통 연초보다 2·4분기와 3·4분기에 더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는 것을 고려할 때 현재 증가율을 유지하면 최소한 1,750만명 이상의 해외 관광객을 올해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되면 2016년에 기록한 기존 최고치(1,724만명)를 3년 만에 경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중국은 2017년 11월 이후 베이징·충칭·산둥 등 중국의 일부 지역에 한해 상품 판매를 단계적으로 허용해왔으나 여행사들이 온라인 상품을 팔거나 전세기·크루즈 상품을 취급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씨트립이 한국행 단체관광 상품을 홈페이지에 올렸다가 당국과의 협의 후 불과 몇 시간 만에 삭제하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가 2년 넘게 이어지면서 한국을 찾은 중국인 방문객은 2016년 806만명에서 지난해 478만명으로 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