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여야의 극한대치는 과연 국회의 존재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국회는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집단과 개인의 이해를 민주적 절차와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풀어야 할 민의의 전당이다. 정치권이 서로 자신의 입맛에 따라 제도와 절차의 룰을 해석한다면 극한충돌을 벗어날 길이 없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극한대립을 불러온 근원적 이유를 따지자면 서로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다만 패스트트랙 도입 이후 국회의장 경호권까지 발동한 극한충돌 사태는 유례가 없었다는 점이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2016년 ‘사회적 참사법’ 수정안, 지난해 ‘유치원 3법’ 개정안 등의 패스트트랙이 통과됐지만 이런 극한대립은 없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제 같은 정치권의 첨예한 이슈는 항상 여야 합의로 처리돼왔다. 한국당이 선거제나 공수처 논의 과정에서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데는 분명히 비판의 소지가 있지만 제1야당이 배제된 채 패스트트랙이 강행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정상으로 볼 수 없다. 집권 여당이 자신만이 절대로 옳다고 고집하고 독선으로 일관하면 정국은 장기간 극한갈등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이런 여야 간 극한대립은 국민들의 정치불신을 키울 뿐이다. 결국 집권당으로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민주당이 제1야당에 패스트트랙 대화의 장에 다시 나설 길을 터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