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레이와, 전쟁없는 평화시대 이어가길"

[현장르포] 새시대 맞은 열도 축제 속 평화 염원

카운트다운·1호 혼인신고 등 기념행사 잇따라

시민들 "전쟁 없던 헤이세이 계승하길" 기원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 우호 중요" 지적도

천황제 존립· 황실 정치 이용 우려 등 과제로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이 열린 1일 오전 도쿄 지요다구 고쿄정원 앞에 새 일왕과 인사하려는 시민들과 취재진이 몰려 있다./송주희기자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이 열린 1일 오전 도쿄 지요다구 고쿄정원 앞에 새 일왕과 인사하려는 시민들과 취재진이 몰려 있다./송주희기자



“5, 4, 3, 2, 1…레이와!”

지난 30일 저녁 일본 도쿄의 대표 번화가인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카운트 다운을 외치며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을 축하했다. 5월 1일 0시’가 되자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열도는 그렇게 아키히토 전 일왕과 ‘헤이세이’(平成)를 보내고 나루히토 새 일왕과 ‘레이와(令和)’ 시대를 먼저 맞이했다.


1일 일본의 제126대 왕으로 즉위하는 나루히토 새 일왕의 즉위식이 거행된 도쿄 지요다구의 왕실 주거지 ‘고쿄’ 주변에는 오전 이른 시간부터 축하 행렬이 이어졌다. 행사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새 시대의 시작을 함께 느끼려는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고쿄 앞에서 만난 시민들의 주된 기대는 ‘평화’에 집중됐다. 가나가와현에서 온 나카시마 타카코(74·여)씨는 “헤이세이처럼 레이와 시대에도 전쟁 없는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헤이세이 30년간 유독 큰 자연재해가 빈발했던 탓에 ‘안전’에 대한 염원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주부 아베 토모요(45)씨는 “헤이세이는 한신·아와지 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 같은 큰 천재지변이 있었다”며 “큰 재해에 대한 대비의 중요성을 배운 것이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재해가 적은 평화로운 레이와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아베 씨는 특히 ‘천황의 정치 불개입’을 강조하며 “아키히토 천황이 지난 30년간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의 천황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며 “나루히토 천황도 이를 본받아 공무에 종사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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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 등 아시아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당부도 이어졌다. 독일인 관광객에게 고쿄를 소개하던 40년 경력의 가이드 이코 케이코(60·여)씨는 “레이와 시대의 주축이 될 젊은 세대는 전쟁에 대한 기억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이 전쟁이 남긴 아픔,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정치적인 부분에서도 소신껏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와의 관계도 평화롭게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대학생이 된 이시이 마유키(18·여)씨도 “내 또래 상당수가 ‘나는 정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입장으로 외교·정치 문제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며 “레이와 시대에는 영토 문제나 역사 등 중요 현안에 젊은 세대 각자가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긴자의 미쓰코시백화점이 레이와 시대 개막을 기념하는 한정상품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송주희기자긴자의 미쓰코시백화점이 레이와 시대 개막을 기념하는 한정상품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송주희기자


한편 주요 기업과 상점들은 ‘레이와 특수’를 겨냥한 마케팅 경쟁에 나섰다. 문구전문점 로프트는 도쿄 시부야 특설매장에서 ‘레이와’ ‘헤이세이’가 적힌 공책·달력·부채·파일 등을 선보이며 고객들에게 무료로 새 연호와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아사히맥주가 앞서 캔에 ‘축 레이와’를 새긴 슈퍼 드라이 맥주를 출시한 데 이어 닛신식품이 이날 즉위 일에 맞춰 달마 얼굴과 금색의 ‘레이와’ 글자가 새겨진 컵라면을 내놓았다. 기린·삿포로 등 주요 맥주 업체들도 ‘축하 파티’ 수요를 감안해 증산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구 전문점 로프트 시부야점을 찾은 고객이 ‘연호 기념품 코너’ 앞에서 ‘레이와’라고 적힌 액자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송주희기자문구 전문점 로프트 시부야점을 찾은 고객이 ‘연호 기념품 코너’ 앞에서 ‘레이와’라고 적힌 액자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송주희기자


문구 전문점 로프트는 도쿄 시부야점에서 레이와·헤이세이 연호가 적힌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송주희기자문구 전문점 로프트는 도쿄 시부야점에서 레이와·헤이세이 연호가 적힌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송주희기자


일왕과 연호가 지닌 상징성을 반영하듯 국민 개개인의 ‘기념 의식’도 이어지고 있다. 새 시작의 의미로 ‘레이와 결혼’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도쿄 내 일부 관청은 혼인신고 특설 창구를 만들었고, 실제로 1일 자정이 되자 수십 쌍의 예비 부부가 신고서류를 접수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런가 하면 운전 면허증의 유효 기간이 ‘헤이세이’로 표기되는 마지막 운전 면허증 갱신을 위해 골든위크 연휴 직전인 지난달 28일 운전면허 센터에는 방문객이 급증하기도 했다.

축제 분위기로 시작한 레이와 시대이지만, 남은 과제는 많다. 당장 천황제 폐지를 둘러싼 목소리에 다시 불이 붙었다. 지난달 29일에는 일부 시민들이 도쿄에서 ‘천황제 폐지’를 촉구하는 거리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로 천황제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가 새 연호 결정 과정에서 국민 대표의 의견을 듣기 전 나루히토 당시 황태자와의 일대일 면담에서 연호 방안을 미리 설명해 새 일왕을 정치에 이용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아베 총리의 이 같은 행동을 ‘자신의 지지 기반과 보수 세력을 겨냥한 정치적 배려였다’고 해석하며 위헌 가능성을 지적했다. 일본 헌법 4조는 일왕의 국정 참여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의견을 묻지 않고 상황 보고만 했기에 헌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일왕 교체나 연호 변경과 관련해 ‘새 시대의 탄생’을 강조하며 개헌 드라이브를 걸어왔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황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거나 정부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는 지적이다. /도쿄=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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