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차가 중국 부품 업체들의 입찰제한을 폐지하면서 완성차 업체와 동반 진출한 국내 부품사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 것이 왔다”는 평가를 내놓으면서도 자동차 산업 서플라이체인 붕괴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중국 부품사들이 국내 완성차 업체 합작법인의 부품공급을 잠식할 경우 국내 부품 업체들은 자칫 ‘우물 안 개구리’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중국 부품 업체들의 굴기는 이미 15년 전부터 예견됐다. 특히 합작 중국사의 로컬 부품 사용 압박과 함께 품질 경쟁력을 빠르게 키워왔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05년 제11차 자동차부품 산업 5개년계획을 통해 독자 부품개발 능력을 강화하도록 지원하는 한편 외국 업체와 기술협력·합작을 권장했다. 2009년에는 자동차 산업 조정 및 진흥 규획을 내놓고 부품 업체들을 합병해 덩치를 키웠다. 2011년에는 부품별로 글로벌 회사들의 투자를 장려하는 정책을 펴며 부품 업체들에 기술과 규모의 경제를 동시에 요구했다. 2012년 신에너지 자동차 산업 발전계획을 내놓고 2015년까지 기술력을 확보해 세계 수준의 자동차부품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2016년에는 오는 2020년까지 1,000억위안 규모의 초대형 자동차부품사를 육성해 세계 톱10 수준으로 올려놓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지원에 맞춰 부품사들도 내달렸다. 2010년 중국항공공업그룹이 제너럴모터스(GM) 산하 조향부품 생산 업체인 넥스티어를 인수했다. 2011년에는 중국의 12개 로컬 업체가 세계적인 변속기 제조 기업 보그워너와 합작하며 기술력을 높였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드디어 지리자동차가 중국에서 자동변속기를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2014년 완샹그룹은 전기차 제조사 피스커를, 2015년 캠차이나는 이탈리아 피렐리를 사들였다. 2016년에는 닝보인이그룹이 벨기에의 자동변속기 제조사인 펀치파워트레인을 인수하며 외형 성장과 함께 기술력을 키웠다. 이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 인수합병(M&A)은 개별 기업들의 자금 여력도 있었지만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금융지원도 뒷받침됐다”고 설명했다. 이미 현지 완성차 업체들은 자국 부품을 약 80% 쓰면서 자율주행과 크루즈컨트롤 등 첨단기술을 적용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2,000만원대에 내놓고도 품질이 톱10(JD파워 기준)에 들며 현지 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중국은 장기간의 계획을 세우고 글로벌 톱10의 부품사를 키우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더해 2030년 승용차에 들어가는 핵심부품 80%를 자국산으로 채우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을 핑계 삼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시간을 허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부터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현대·기아차의 중국 실적이 추락하고 지난해 한국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하는 등 자동차 산업에 위기가 닥쳤음에도 지난해 12월에야 대책을 내놓았다. 이마저도 대출·보증 만기 연장과 긴급경영안정자금 등 금융지원이 주를 이뤘다. 당장 기술력이 추월당하고 도산위기에 몰리며 생태계가 붕괴될 위기에 놓였는데도 시장이 작은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등 미래 차 생태계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물론 우리 정부도 중국처럼 중소기업 위주의 부품사를 더 키우기 위해 ‘부품사업재편지원단’을 운영하는 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지원단은 현재 지역 자동차부품연구원을 중심으로 시범 운영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힘이 드는 구조조정과 산업재편에는 관심이 없다는 불만도 나온다. 한 부품 업체 대표는 “현재의 기술력도 문제인데 수소차와 전기차 체제로 개편한다는 대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전기차나 수소전기차를 키우기 전에 기존 부품사들이 먼저 줄줄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부품사들이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산 자동차산업협동조합 실장은 “국내 부품사들 가운데 높은 기술력으로 중국에서 현지 완성차 업체와 합작해 새로운 기회를 찾은 부품사들도 많다”며 “기술력이 안 되는 업체들은 (사업을) 철수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