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방치된 200조 퇴직연금]자산배분 규제 풀고 금융사 경쟁 유도해야

<하>운용의 판을 흔들어라

수익률 높이려면 위험감수 불가피

투자비중 세세한 규정 폐지 절실

매년 성과 평가해 운용사 바꾸고

濠처럼 가입자 기금간 이동 허용

기업도 퇴직부채 위기의식 절실

직원 복지차원 DC형 교육 관리를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은 제도 도입 이후 이어진 고질적 문제다. 전문가들은 각종 운용 규제, 금융사들의 경쟁을 저해하는 현재의 계약구조 등의 제도 개선 없이는 10년 후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무엇보다 퇴직연금 부채가 갈수록 커지는 기업들의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자산배분 규제 완전히 없애라”=퇴직연금 수익률 제고의 첫 단추는 자산배분 규제를 푸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현재 퇴직연금 감독규정은 해외주식·파생상품·부동산·채권 등에 대한 투자비중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 주식 등의 실적배당형 상품을 전체 자산 중 70%까지만 담을 수 있다. 확정기여형(DC형)의 경우 사모펀드·리츠·주가연계증권(ELS) 등의 자산은 아예 투자가 불가능하다.

문제는 ‘규제가 곧 안전’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자산을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운용 업계 관계자는 “파생상품이나 헤지펀드는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돼 있지만 실제 전략에 따라 오히려 저위험·저변동성을 추구하는 상품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수익률을 더 높이겠다면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면서 “자산배분 규제는 없애는 것이 맞다”고 했다.


◇금융사는 경쟁구도 속에서 뜀박질하도록 만들어야=퇴직연금 운용을 맡은 금융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이를 토대로 성과를 끌어올리는 구조가 돼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현 구조에서는 금융사들이 퇴직연금 가입자를 끌어들인 후 큰 노력 없이도 정기적으로 수수료를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상상조차 힘들다. 대표적인 곳이 호주다. 호주의 퇴직연금제는 가입자들의 기금 간 이동이 자연스럽다. 성과가 저조한 기금은 자연스럽게 퇴출되며 운용사들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런 영향으로 호주 퇴직연금 중 가장 규모가 큰 유형인 산업형의 경우 지난 1996년 180여개에서 2016년 40개로 줄었다. 대신 기금은 자산 규모가 더 커지고 우량화됐다.

관련기사



업계에서는 기금형 퇴직연금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기금형은 회사와 분리된 별도의 연금 수탁법인(기금)을 설립해 노사 및 외부 전문가 등이 모여 운용 등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매년 성과를 평가해 위탁운용사를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사들이 치열하게 수익률을 관리한다. 국민연금·우정사업본부·사학연금 등의 장기수익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운용 손 놓은 기업들, ‘위기의식’ 절실=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은 기업들의 ‘각성’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운용수익률이 임금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할 경우 직원들의 퇴직이 급증하는 시점에 퇴직연금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현 제도하에서는 DB형 기업들이 사내에 적립금운용위원회를 두고 3~5년 중장기 ‘투자원칙보고서(IPS)’를 만들어 금융사에 운용을 맡기고 정기적으로 자산배분과 성과를 측정해 성과가 부실하면 금융사를 교체하는 방법으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

DC형을 택한 기업도 수익이 저조한 직원들을 특별관리·교육하도록 금융사에 요구하면 된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해외 기업들은 직원 복지 차원에서 금융사를 통해 DC형 계좌의 수익률을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서는 수익률 관점이 아닌 기업 비즈니스 차원에서 금융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성과가 없어도 계약이 유지되는 구조는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자산운용사 운용능력도 살펴봐야=자산운용사들이 큰 자금을 장기적으로 굴릴 능력이 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상품 단위의 펀드 운용과 자산배분을 통한 운용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 연구위원은 “부채 등을 감안해 장기적으로 자산을 배분하고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하는 것이 기금 운용”이라며 “하지만 일부 운용사를 제외하고 경험과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기금형 지배구조 도입에 대비해 자산운용사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완기·이혜진기자 kingear@sedaily.com

이완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