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日 레이와 시대 개막]첫 메시지, 정치색 보다 화합에 무게…아베 우경화 '포로'되나

■새 일왕 나루히토 "세계평화 간절히 희망"

이틀간 간소한 퇴위·즉위식 거행

국민에게 더 친근하게 접근 포석

평화 헌법 수호 언급은 없어

선왕과 다른 행보 걷나 우려

"정치 얽혀 일왕 이미지 퇴색 될라"

일각선 "천황제 폐지" 목소리도

나루히토(왼쪽) 일왕과 마사코 왕비가 1일 도쿄 왕궁으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도쿄=EPA연합뉴스나루히토(왼쪽) 일왕과 마사코 왕비가 1일 도쿄 왕궁으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도쿄=EPA연합뉴스



1일 일본의 제126대 왕인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이 거행된 도쿄 지요다구의 왕실 주거지 ‘고쿄’ 주변에는 오전 이른 시간부터 축하 행렬이 이어졌다. 행사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아키히토 전 일왕과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보내고 나루히토 새 일왕과 ‘레이와(令和)’ 시대의 시작을 함께 느끼려는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하지만 축제 분위기인 왕실 바깥과 달리 즉위식이 열린 왕궁은 엄숙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날 오전10시30분 시작된 즉위식에서는 청동검과 청동거울, 굽은 구슬 등 이른바 ‘삼종 신기’로 불리는 일본 왕가의 상징물 중 일부를 넘겨받는 의식이 침묵 속에 진행됐다.

일본 열도 전역을 달구고 있는 축제 분위기와 달리 즉위식은 7분 만에 끝났다. 앞서 전일 아키히토 일왕의 퇴위식도 13분여 만에 간소하게 끝났다. 일본 언론들은 이틀간의 간소한 퇴위식·즉위식에 대해 왕실이라는 위엄보다는 일본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일본 국민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즉위식 이후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정부부처 대신(장관)과 지방단체장 등 국민 대표를 처음 만나는 자리인 ‘조현의식’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 자리에서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 그리고 세계 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는 즉위 후 첫 공식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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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새 일왕은 ‘일본 국민의 행복’과 ‘세계 평화’에 대해 언급했지만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현행 일본 헌법 수호의 메시지는 밝히지 않아 헌법 수호 메시지를 분명히 밝힌 선왕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일본 헌법에 따라 일왕의 국정 개입은 엄격히 금지되지만, ‘정신적 지주’라는 일본 내 위치로 인해 일왕은 이러한 메시지를 내비치며 그동안 일본의 우경화 흐름을 견제해 왔다는 평가다.

이에 일본 언론들은 나루히토 일왕이 평화헌법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상왕의 발걸음을 깊이 새기겠다”며 소감 대부분의 시간을 아키히토 전 일왕 관련 내용에 할애한 것을 들어 새 일왕의 기본적인 입장 역시 아버지와 같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또 새로 즉위한 일왕으로서 원론적이고 기본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즉위 전 평화헌법 수호에 대한 의지를 여러 차례 밝힌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식에서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 논란을 만드는 것보다는 ‘화합’이라는 의미가 담긴 ‘레이와’ 연호처럼 산뜻하게 새 시대의 출발에 무게중심을 뒀다는 분석이다.

다만 일왕 즉위와 연호 교체로 인한 분위기를 개헌과 연결 지으려 한다는 지적을 받는 아베 총리의 행보를 어느 정도까지 견제할지가 관건이다. 즉위식에서 말을 아낀 새 일왕이 부친이 보여준 평화주의자의 모습을 계승할지 아니면 자신만의 색을 드러낼 지에 많은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신격화된 일왕의 이미지가 헌법이 보장한 평등이라는 현실과 맞지 않고 이마저도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얽힐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천황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왕 퇴위식이 있었던 전날 도쿄 JR신주쿠역 광장에는 150명이 모여 천황제 폐지를 촉구하는 ‘반(反)천황제 운동 연락회’가 열리기도 했다.


노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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