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로터리] '神話'가 필요 없는 사회

양향자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 체감실업률은 25.1%에 달했다. 지금 청년들은 단군 이래 가장 화려한 ‘스펙’을 가진 세대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연애·결혼·주택을 포기한 삼포세대, 더 나아가 ‘N포세대’라고 불리는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이기도 하다.

한 취업포털이 청년 1,2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자신을 ‘무민(無mean) 세대’, 즉 무의미한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는 20~30대가 절반이나 됐다. 이들 세대를 중심으로 ‘대충 살자’가 하나의 트렌드가 돼 도서 시장에서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나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태어나면서부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세대들이 기존의 패러다임에 피로를 느끼는 것이다. 이 같은 피로감은 무한한 경쟁에 비해 주어지는 결과가 생각보다 너무 작고 그 작은 결과를 얻기 위한 경쟁과정마저 불공정하다는 생각에 따른 박탈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박탈감 때문에 노력하는 청년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청년들이 ‘희망’을 선명하게 바라보지 않고 흐릿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도 스친다.


30여년 전 여상을 졸업한 후 반도체 회사에 입사해 개인적으로 겪었던 일들이 이제는 청년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가 된 것 같다. 혁신적이고 선도적인 곳으로 평가받는 그곳에서도 고졸 출신은 기회가 적었다. 커피 타기나 복사 등 단순 심부름만 하는 여직원에게는 배움의 기회도, 승진의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유리천장이 생각보다 두꺼웠던 것이다. 그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죽을 만큼 공부하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선배들의 가르침과 동료들의 배려로 고졸 출신으로는 최초로 임원을 맡는 등 좋은 결과를 얻었다.



나의 이러한 삶을 사람들은 ‘고졸신화’라고 부른다. 신화라는 말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힘든 일을 해낼 때 부여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을 해내기 힘들다거나 신화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남들에게 나처럼 노력해서 성공하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 사회가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출신이나 배경에 의해 기회가 결정돼서는 안 될 것이다. 출신이 어디이든 배경이 어떠하든 오늘을 열심히 살면 정당한 대가와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개개인에게 놓여 있는 출발선을 동일하게 맞출 수는 없지만 출발선이 어디에 있든지 능력이 있으면 그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회, 기회의 평등이 이뤄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가 실현된다면 ‘고졸신화’와 같은 말은 이제 사라질 것이다. 고졸에게, 여성에게 성공이 더 이상은 특별한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함으로 희망을 얻은 청년들이 만들어나갈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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