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통한의 극동군사재판

1946년 시작, 일왕· 세균전 면죄부




1946년 5월3일 오전11시47분, 일본 도쿄, 옛 육군성 대강당.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자들을 재판하는 극동국제군사재판이 열렸다. 재판은 30여개월이 지난 1948년 11월12일 끝났다. 도쿄 재판에 회부된 A급 전범 28명 가운데 재판 도중 사망한 2명과 정신이상 진단을 받은 1명을 제외한 25명 전원에게 유죄 판결이 떨어졌다. 도조 히데키 전 총리(육군 대장)를 비롯한 7명이 사형, 16명이 무기징역, 1명이 금고 20년, 1명이 금고 7년의 형을 받았다.


극동군사재판은 과연 침략자 일본의 전쟁범죄를 제대로 단죄했을까. 일본 육해군의 대원수이며 전쟁을 결정하고 실행한 히로히토 일왕은 기소 단계부터 빠졌다. 재판정이 침략전쟁 기간으로 설정한 1928년부터 1945년 패전까지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했던 유일한 인물인 히로히토는 미 군정의 철저한 비호를 받았다. 도조 전 총리에 대한 심문 도중 일왕의 전쟁범죄 가담 사실을 규명할 수 있는 증언도 나왔다. ‘일왕에게 충성한다’는 일념에 사로잡혔던 도조는 “덴노의 의사에 반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 없다”고 분명히 증언했으나 기겁한 미 군정은 발언 자체를 취소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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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형에 처해진 전범 7명의 시신은 화장해 태평양에 뿌려질 예정이었다. 숭배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 변호사가 화장장 직원을 매수해 유골을 절간의 불상 밑에 모셨다. 1978년 일본은 이들과 옥사한 7명의 유골을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했다. 일본 정치인들은 해마다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이들을 기린다. 일본 왕에 대한 면죄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를 사면한 것과 진배없다는 지적이 과하다고 치자. 미 점령군이 해체 1호로 지목한 ‘국가 신토(神道)’ 시설에 전범의 유골을 모시고 해마다 국가 지도자들이 참배하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미국은 세균전의 책임도 묻지 않았다. 독일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미국은 어쩌자고 이런 수를 뒀을까. 국가의 상징인 ‘덴노’를 건드리면 패전한 일본을 통치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은 한국에서의 전범 재판까지 허용하지 않았다. 도쿄 외에 아시아 50개 지역에서 전범 재판이 열렸지만 한국만큼은 예외였다. 전범 재판이 한국에서 열렸다면 친일파가 득세하기는커녕 생존할 수 있었을까. 결국 죽은 전범은 호국 영령이 되고 산 전범은 풀려나와 나라를 다스렸다. 전범 기시 노부스케는 지난 1958년 정계에 복귀해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외손자가 ‘전쟁할 수 있는 권리’를 찾으려는 현 아베 신조 총리다.
/권홍우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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