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북쪽 지역의 작은 마을 코초는 평화로웠다. 2014년 초여름,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소수 종파인 야지디의 마을인 이곳에서 농부 둘이 실종됐고 가축들이 사라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내 IS가 마을을 둘러쌌다. 그들은 광기와 폭력의 집단이었다. 개종하지 않는 남자들과 늙은 여자들을 집단 학살했고, 여성들을 성폭행했다. 21살이던 나디아 무라드도 당했다. 11남매 중 막내였던 나디아는 IS에 의해 오빠 여섯과 엄마를 한꺼번에 잃었다. 그는 IS대원의 ‘성 노예’가 됐다.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안 나디아 무라드의 자서전 ‘더 라스트 걸’이 번역, 출간됐다. 책 제목은 고통받는 여성의 이야기는 “내가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탈레반 무장단체가 저항한 인권운동가로 만 14세로 지난 201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사프자이에 이은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수상자가 바로 무라드였다.
“정의와 가해자 처벌만이 존엄성을 되살리는 유일한 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이렇게 소감을 밝힌 무라드는 책을 통해 차분하게 자신이 겪은 사건들을 술회한다. 그는 IS대원에게서 또 다른 IS대원에게로 장난감처럼 넘겨지며 반복적으로 폭력에 시달렸다. 강간과 폭행을 피해 탈출을 시도했다가 다시 붙들린 날의 이야기는 읽어내기조차 힘들다. 그는 경비병 여러 명에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어린 나이에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극도로 차분하게 당시 상황을 드러낸다. “진솔하고 담담하게 전하는 사연은 내가 테러에 맞서는 최고의 무기”라며 되돌리고 싶지 않을 당시를 떠올린다. 또 한 번의 목숨 건 탈출을 시도한 그는 한 수니파 아랍 가족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지옥에서 벗어났다.
성노예에서 탈출한 무라드는 국제형사재판소에 IS를 제소했다. 끔찍한 만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 대목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서 지난 1992년 3월 “내가 증거이고 내 몸이 증거다”라며 증언에 나섰고, 이후 평생을 여성인권운동가로 살았던 김복동(1926~2019) 할머니가 겹쳐진다. 이것은 결코 먼 일, 남의 일이 아니다.
전쟁 성폭력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피해 사실을 알리는 드물었고 때문에 무라드의 호소는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성폭행 피해자’ ‘노예’ ‘난민’의 꼬리표 대신 ‘생존자’로서 ‘여성 인권의 대변인’으로 살았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수식어를 품었다.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는 IS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이라크가 중동의 화약고가 됐는지를 짚어준다. 한 세기 전 우리의 꽃다운 어린 여성들이 겪은 일이 21세기에도 자행되고 있음을 일깨운다. 1만7,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