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토요워치] 풍류에 취하고 품격을 취하다

■'愛주가'서 '美주가'로…주도의 재발견
회식 중심 유흥문화 퇴조 더불어
절주하되 좋은술 찾는 추세 확산
수제맥주·와인 아카데미 등 증가
위스키 양조장 투어 상품도 늘어
홈바용 와인셀러는 혼수 단골로

  • 민병권 기자
  • 2019-05-03 18:05:58
  • 방송·연예
[토요워치] 풍류에 취하고 품격을 취하다

# 유통업체 사원 박태경(가명)씨는 요즘 수제 맥주 제조법(홈브루잉) 공부에 푹 빠졌다. 지난해 온라인쇼핑몰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정용 재래식 수제 맥주 제조 키트를 호기심에 10만여원을 주고 구입한 뒤 재미가 들렸다. 최근에는 원액 등을 넣으면 자동으로 맥주를 발효·제조해주는 홈브루잉 머신을 사겠다며 금연으로 아낀 돈을 모으고 있다.

# 중견기업 임원 김진형(가명)씨는 올해 여름휴가 때 큰맘 먹고 부인과 함께 프랑스로 ‘와이너리 투어(와인저장고 여행)’를 떠난다. 재작년 일본 가족여행 때 가이드가 안내해준 사케 양조장에서 술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시음하면서 좋은 술맛에 눈을 떴다.

폭음에 지쳤던 한국의 술 문화가 바뀌고 있다. 취하려고 마시기보다는 술 자체의 맛과 멋을 즐기고 탐구하는 이들이 느는 추세다. 절주하되 원료와 제조과정, 배경 스토리 등을 따져 ‘좋은’ 술을 권하는 사회로 변모 중이다.
[토요워치] 풍류에 취하고 품격을 취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초에 발간한 ‘2018년 주류 소비 트렌드 조사’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감지된다. 전국의 만 19~5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어떤 음주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묻는 질문에 총 13개 항목 중 ‘즐기는 술’을 꼽은 답변이 43.9%(복수응답 선택)로 1위를 차지했다.

집에서 먹는 ‘홈술’을 선택한 응답도 3위(35.4%)를 기록했다. 혼자 먹는 술인 ‘혼술’을 고른 응답자 역시 세 명당 한 명 정도로 5위를 나타냈다. 직장 회식 중심의 유흥문화 퇴조와 더불어 가족과 친구 중심의 선진국형 저녁 생활 문화가 서서히 정착하는 데 따른 현상으로 보인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요즘에는 신혼부부가 선호하는 가전제품 목록에 홈바용 와인셀러가 단골품목으로 들어가는 편”이라며 “대형마트에서도 좋은 품질의 와인 등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홈바에 좋은 술 몇 병을 보관해놓고 가족·지인들을 초대해 조촐하게 홈파티를 하고 싶어하는 소비자가 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높은 가성비로 소문난 칠레 와인 ‘G7’은 이마트에서 출시된 지 10년째인 올해 4월 누적 판매량 800만병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를 넘어 주류에 담긴 문화와 풍류를 즐기려는 ‘미주가(美 酒 家)’ 문화 현상으로 이해된다. 국내에서는 서울 이태원의 ‘굿비어공방’을 비롯해 일반인들에게 수제 맥주와 와인 제조법을 가르쳐주는 아카데미들도 생겨나고 있다. 하나투어 등 여행사들도 와이너리 투어, 스코틀랜드 위스키 양조장 투어 등의 상품들을 늘려가고 있다. /민병권·김현상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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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투데이

[토요워치]‘홈바’서 나홀로 한잔…싱글몰트愛 빠지다

주 52시간 근무로 저녁에 여유가 생긴 직장인 A씨는 최근 새로운 술맛에 빠졌다. 회식자리에서 자주 마시는 소주와 맥주가 아닌 양주, 그중에서도 위스키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이다.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을 넘어 제대로 즐기기 위해 위스키를 공부하는 것은 물론 함께 좋은 술을 음미하는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스피릿’이라고 불리는 위스키의 주정(酒精)이 정말 영혼의 단짝처럼 느껴진다고 그는 말한다.

좋은 술을 권하는 사회의 최전선에는 양주의 대표격인 위스키가 있다. 과거 회식자리에서 폭탄주를 제조하기 위해 첨가됐던 블렌디드 위스키의 시대가 가고 싱글몰트가 새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말 그대로 ‘하나’의 양조장에서 만든 몰트 원액을 숙성시켜 만든 술을 말한다. 맥아만 원료로 사용하고 다른 증류소의 원액과 섞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대신 맛과 향이 뛰어나다. 실제 주류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싱글몰트 위스키의 출고량은 전년 대비 4.7% 증가했다. 전체 위스키 시장이 재작년 기준 출고량 약 150만상자로 지난 2008년(284만상자) 대비 절반 수준으로 고꾸라진 점을 고려하면 싱글몰트 위스키만 인기를 끄는 상황이다. 국내 식문화가 ‘파인 다이닝’이라는 말과 같이 고급화된 것처럼 싱글몰트 위스키가 ‘파인 드링킹’ 문화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인 드링킹은 말 그대로 잘, 건강하게, 맛있게, 멋있게 술을 마시자는 의미다.

폭탄주 제조용 ‘블렌디드’ 뚜껑 닫히고

가격 비싸도 맛·향 좋은 싱글몰트 인기



싱글몰트 위스키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동호회를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워라밸’ 분위기에 편승해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위스키 클래스는 물론 좋은 바를 함께 방문하는 모임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문토’를 비롯한 다양한 소셜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회원을 모집하는 위스키 모임에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리더’가 있고 일정 비용을 지불하면 멤버로 활동할 수 있다.

최근 위스키 모임에 새로 가입한 한 직장인은 “싱글몰트 위스키의 가격이 비싸다는 점도 동호회의 필요성을 인식시켜 준다”며 “바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두어 병의 위스키를 나눠 마시면서 품평회를 하는데 회식자리와 다른 즐거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싱글몰트의 인기에 편승해 주류 업체들이 관련 가격 상승에 나선 점도 비싼 위스키를 함께 마시는 동호회의 인기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세계 1위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을 국내에 수입 판매하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는 제품 가격을 최대 약 8% 인상했다. 맥켈란 등 다른 싱글몰트 업체들도 가격을 올리고 있어 직장인 입장에서는 혼자 한 병을 사서 마시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워라밸 확산에 ‘위스키 동호회’도 성황

혼술족 로망 ‘홈바’ 관심…데코시장 쑥


위스키 동호회와 반대로 혼술을 즐기는 위스키족에게는 ‘홈바’라는 꿈이 자라고 있다. 편의점의 ‘네 캔 만원’이 혼술족 양산에 불을 지폈다면 위스키는 물론 칵테일까지 제조하는 홈바는 혼술족의 끝판왕들이 실현하는 꿈이라는 설명이다.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조명한 ‘나 혼자 산다’에 나온 개그맨 박나래의 ‘나래바’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혼술족을 겨냥한 홈 데코 시장이 커지면서 홈바도 진화하고 있다. 가구 업계 관계자는 “혼자 생활하는 1인 가구에서 ‘홈바’와 ‘홈카페’ 열풍이 불고 있다”며 “가구 업체 입장에서는 드물게 새로 개척되는 시장이어서 앞으로 홈 전용 바 테이블은 물론 전자기기 업체들과 협업해 다양한 제품들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위스키와 같은 고도주는 남성만 마신다는 편견도 점차 깨지는 분위기다. 위스키는 스트레이트로 마시지 않더라도 탄산수와 섞어 ‘하이볼’로 마시거나 진저에일·소다와 함께 마시는 등 시음법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주류 업계는 분위기가 좋은 레스토랑과 음식점을 중심으로 시음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등 2030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프로모션 마케팅도 늘리고 있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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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오픈한 느린마을양조장&펍 선릉역점./사진제공=배상면주가

[토요워치]막걸리 아닙니다, ‘맛’걸리라 불러주세요

■진화하는 민속주

직접 만든 ‘하우스 막걸리’에 2030 홀딱

홍대·강남 등 핫플레이스에 전문점 오픈

전통주 제조사 도수 낮춰 젊은입맛 공략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막걸리는 ‘싼값에 배불리 먹는 술’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았다. 잘 어울리는 안주를 떠올려봐도 토속적인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이 해외에서 건너온 맥주들은 술집을 휩쓸며 안방까지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막걸리는 점차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막걸리에는 저력이 있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전통적인 레시피가 있었기 때문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 젊은 층들은 외국산 주류제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소비했던 시기를 지나 우리 토속 주류에 관심을 갖는 ‘선진국형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최근 홍대와 신사역 등에 ‘하우스 와인’처럼 직접 제조한 막걸리를 파는 ‘하우스 막걸리’ 집이 늘어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수제 맥주와 하우스 와인의 맛을 본 젊은 층들이 직접 제조한 막걸리에도 열광한 것. 지난 2012년 신사역 인근에 문을 연 ‘베러댄비프’는 하우스 막걸리 열풍의 원조 격이다. 퓨전 막걸리와 퓨전 음식의 조합이라는 콘셉트로 인테리어도 고풍스럽고 개성 있게 꾸며 막걸리에 대한 편견을 깼다. 2010년 홍대를 시작으로 광화문·강남 등으로 지점을 늘려 전통주 전문업체로 성장한 ‘월향’도 젊은 층에게 ‘막걸리도 힙(Hip)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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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막걸리 제품 ‘드슈’./사진제공=서울탁주

개인이 시작한 막걸리 열풍은 기업이 이어받았다. 2014년 배상면주가는 강북의 중심지 을지로에 대표 제품인 ‘느린마을 막걸리’를 콘셉트로 ‘느린마을 양조장&펍’을 열었다. 이를 통한 가맹 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전통주 제조업체들도 지난해부터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 젊은 감성의 막걸리 신제품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특히 프리미엄 막걸리의 대중화를 통해 관련 매출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순당이 지난해 5월 선보인 일반 생막걸리보다 1,000배 많은 1,000억마리의 유산균을 담은 ‘1,000억 유산균 막걸리’는 꾸준히 매출이 상승해 올 1·4분기 기준 이마트 탁주 매출 4위에 올랐다. 서울탁주는 같은 해 10월 도수를 5%로 낮춘 ‘인생 막걸리’를 출시하며 ‘저도주 바람’에 편승했다. 전통 막걸리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지평주조는 젊은 층 인기에 힘입어 2014년 28억원이던 매출을 지난해 166억원까지 끌어올리며 연간 누적판매량 1,800만병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이 같은 성장세를 이끈 것은 20~30대 여성 고객들이다. 트렌드를 주도하는 이들이 프리미엄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이마트에서 3,000원 이상 막걸리 비중은 2년 새 3배나 뛰었고 1만원 이상 고가 막걸리도 판매가 늘었다. 1927년부터 해창주조장에서 만든 해창막걸리와 손으로 빚은 복순도가 손막걸리 등 1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막걸리도 최근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

젊은 층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 막걸리 제조업체들은 제품 다변화로 막걸리 열풍을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서울탁주는 최근 1년여간의 연구 끝에 파인애플 과즙과 막걸리·탄산을 결합한 도수 4%의 제품 ‘드슈’를 출시했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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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내가 주류(主流)다” 원조 뺨치는 신대륙 주류(酒類)

유럽이 지배해오던 주류시장에서 남미와 아시아 등의 이른바 ‘신(新)대륙’ 술이 거센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유럽의 구대륙 술이 전통적 생산방식을 고집하며 깐깐한 애호가를 겨냥했다면 신대륙 술은 대량생산되는 기성복처럼 몸값을 확 낮추며 저변을 넓히고 있다. 특히 2030세대를 중심으로 와인과 위스키 소비가 늘면서 ‘가성비’ 좋은 신대륙 술이 대중화되는 모습이다.

◇‘와인 종주국’ 프랑스 위협하는 신대륙 와인=3일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로 수입된 와인 중 가장 큰 물량을 차지한 국가는 칠레였다. 칠레산 와인 수입량은 1만988톤으로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5,495톤)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칠레산 와인 수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지난 2004년 이후였다. 칠레산 와인은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국내로 물 밀듯 흘러들었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기준 10위권 와인 안에 칠레산 와인은 절반이 넘는 6개가 포함됐다. 이 중에서 상위권에 자리 잡은 ‘L까베르네쇼비뇽’은 6,000원대로 가격이 저렴하다.

칠레산을 필두로 한 신대륙 와인은 가격은 물론 소비자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신대륙 와인에는 최근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모스카토’처럼 풍부한 과실향과 달콤한 맛의 와인이 많다. 호주와 아르헨티나산 와인도 이 같은 이유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호주산 와인은 2017년 사상 처음으로 수입액 1,000만달러를 넘어섰다. 박화선 롯데백화점 주류 바이어는 “구대륙에서는 테루아르 기반의 전통적 생산방식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에 수확이 안 좋을 때는 가격 편차가 심하지만 신대륙 와인은 기업형 대량생산으로 맛과 가격이 일관적이라는 장점이 있다”면서 “또 프랑스산 와인은 ‘탄닌’이라는 쓴맛이 느껴져 입문자에게는 어려울 수 있지만 칠레산 등 신대륙 와인은 달콤한 맛이 강해 대중화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신대륙 와인은 입문자에게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 소비자를 끌어모았다. 구대륙 와인이 라벨에 포도 수확 연도인 ‘빈티지’와 생산자명, 지역명, 병입사, 알코올 도수, 용량 등 복잡한 정보를 담은 데 반해 신대륙 와인의 라벨은 간단명료하다. 포도의 품종과 그 품종이 나타내는 맛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대표적 호주산 와인인 ‘하디스 틴타라(Hardys Tintara)’의 라벨에는 회사명인 하디스와 제품명인 틴타라, 빈티지인 1998, ‘Shiraz’라는 포도 품종, 생산국만을 표시한다. 와인 초보자가 본인의 취향에 맞는 포도의 품종만 기억하면 되기 때문에 와인의 세계에 쉽게 발을 담글 수 있다. 이외에도 신대륙 와인은 코르크 캡이 아닌 트위스트 캡을 적용하는 등 소비자의 편의를 우선시한다.

유럽 독주 깨고 남미·아시아 술 주목

일관적인 맛 대량생산으로 몸값 낮춰

마트 와인순위 10위권에 칠레산 6개

日 하이볼 가파른 성장…품귀 사태도



◇위스키 시장의 떠오르는 샛별, 아시안 위스키=위스키 시장에서도 일본산 위스키가 작지만 강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마트의 지난해 1~4월 판매량 기준 상위 10개 위스키는 ‘발렌타인’과 ‘로얄살루트’ 등 모두 스카치 위스키가 차지했다. 하지만 올해 1~4월에는 일본과 미국산 위스키가 10위권 안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물론 고급 위스키라고 하면 여전히 많은 사람이 스코틀랜드산 스카치 위스키를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 150년 역사의 일본 위스키가 ‘떠오르는 별’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이제 국내에는 잘 알려진 산토리 위스키 외에도 닛카·가루이자와 등 다양한 브랜드를 바탕으로 일본은 미국·스코틀랜드·아일랜드·캐나다와 함께 위스키 5대 생산국가다. 일본 내에서는 탄산수와 섞어 마시는 ‘하이볼’ 마케팅에 힘입어 8년 연속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며 재고 부족으로 품귀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 위스키가 내수용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품질도 명실공히 국내외에서 모두 최상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2001년 닛카 위스키 ‘싱글 캐스트 10년’이 월드 위스키 어워드로 최고 득점을 받은 데 이어 2006년 가루이자와 ‘퓨어 몰트’, 2015년 산토리 ‘야마자키 싱글 몰트 셰리 캐스트’, 최근에는 산토리 ‘히비키 21년’이 위스키 바이블(Whisky Bible)에서 세계 최고 위스키로 선정됐다. 지난해 산토리 ‘학슈 25년’은 월드 베스트 싱글몰트, 요이치 증류소의 ‘타케츠루 17년’은 월드 베스트 블렌디드 위스키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1월 소더비 홍콩경매소가 실시한 경매에서는 산토리홀딩스의 싱글몰트 위스키 ‘야마자키 50년’ 한 병이 무려 233만7,000홍콩달러(약 3억3,000만원)에 낙찰됐다. 2011년 150병을 한정판매할 당시만 해도 100만엔(약 1,000만원)에 판매된 위스키가 7년 만에 33배나 몸값이 뛴 셈이다.

최근에는 일본 위스키보다도 더 낯선 대만 위스키가 조금씩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2002년 대만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주류산업 독점이 해제되면서 2008년 처음 선보인 카발란 싱글몰트 위스키가 대표적이다. 아열대 기후의 특성상 알코올이 자연 휘발되는 속도와 숙성속도가 빨라 위스키 제조가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3배 빠른 숙성속도와 생산량을 무기로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있다. 2013년부터는 세계적 주류품평대회인 ‘WWA’에서 2년 연속 ‘세계 최우수 싱글몰트상’을 받을 정도로 품질도 인정받으면서 전 세계 7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하이볼’ 붐으로 위스키 물량이 부족해지자 대거 수입되면서 인지도를 빠르게 높였다.

/허세민·이재유기자 semin@sedaily.com

[토요워치] 풍류에 취하고 품격을 취하다
로보케어가 개발한 바텐더 로봇 ‘카보’가 서울의 한 칵테일바에서 위스키에 담을 얼음을 깎고 있다. /사진제공=로보케어

[토요워치]‘로봇 바텐더’ 쉐키쉐키·AI가 메뉴별 와인 추천

■첨단 IT가 바꾸는 주류 문화

로봇 ‘카보’ 얼음 둥글게 깎아 잔에 퐁당

LG 와인셀러, 주인이 좋아하는 맛 분석

日선 술맛 감별 ‘로봇 소믈리에’도 등장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사거리 인근의 칵테일바 ‘커피 바 K’에는 이색 명물이 있다. 사람의 상반신 모습으로 제작된 로봇 바텐더 ‘카보’다. 위스키 등에 들어갈 얼음을 둥글게 깎아 잔에 넣어주고 프로그램된 내용에 맞춰 손님에게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다. 국내 중소기업 로보케어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도움을 받아 지난 2017년 개발해 시판한 로봇이다. 얼음을 공 모양으로 정밀하게 깎으면 네모난 얼음보다 서서히 녹아 온더록(얼음 탄 위스키)의 온도와 맛을 최대한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카보를 구입해 설치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무려 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카보의 사례는 주류산업 생태계가 첨단기술과 만나 융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술을 즐기는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변화하면서 이에 맞추기 위해 로봇이나 정보기술(IT)을 적극 활용하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월19일 LG전자가 공개한 인공지능(AI) 와인셀러다. 해당 와인보관냉장고에 탑재된 AI는 평소 주인이 저장하는 와인과 그에 대한 맛 평가 정보를 학습했다가 식사 메뉴에 맞춰 궁합이 좋은 와인을 추천해준다. 고급 주류를 가장한 짝퉁 제품의 범람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도 나왔다. ‘위스키 진위 판별기’라는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앱)이다. 해당 앱을 구동시킨 스마트폰을 위스키 병목에 붙어 있는 무선인식태그(RFID태크)에 가져다 대면 해당 술의 유통 이력과 진품 여부를 알 수 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술자리의 흥을 돋워주는 앱도 나오고 있다. 복불복 방식으로 벌주를 마실 당첨자를 고르는 앱인데 주로 젊은이들이 친구들끼리 갖는 술자리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도 주류 관련 문화에 첨단기술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바텐더 로봇을 넘어 아예 술의 맛을 감별하는 로봇 소믈리에까지 나왔다. 일본의 전자기업 NEC가 2008년 개발한 와인봇이다. 세계 최초의 로봇 소믈리에로 기록됐다. 이 로봇은 적외선 파장을 감별하는 센서로 와인의 당도와 성분 등을 감별한다. 이후 미국 등에서 보다 정밀한 와인 맛 감별 및 블렌딩 로봇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에서 개발된 빈퓨전(VINFUSION)은 다양한 와인의 맛을 감별해 저장했다가 이용자가 자신의 와인 취향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풍미의 와인을 블렌딩해 잔에 담아준다. LG전자 관계자는 “앞으로 빅데이터와 센서기술, AI기술 등이 보다 고도화되고 융합되면 더 정밀하게 개인 취향별로 주류를 골라주는 스마트 제품들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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