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금융 서비스를 위해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출범했던 케이뱅크가 2년 만에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대주주인 KT의 현 경영진과 정부 간 ‘갈등’으로 케이뱅크의 지분 한도초과보유 승인을 위한 적격성 심사가 중단된 데 이어 급기야 대주주 교체 압박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시장의 잣대로만 판단하면 되는데 정무적인 판단이 끼어드는 ‘금융의 정치화’가 되면서 KT의 1호 인터넷은행 꿈이 벼랑에 몰린 것이다. 금융권의 메기를 만들겠다고 호언해온 금융당국은 이리저리 눈치를 보느라 케이뱅크 해법을 더 꼬이게 했다.
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금융위원회가 KT의 케이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중단한 후 케이뱅크 대주주 교체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올해 초 결의했던 5,919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불발로 자본금이 부족해져 건전성 위기 논란이 불거지자 새로운 주주를 맞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케이뱅크 측은 금융당국의 대주주 교체 압박은 없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대주주 교체는) 주주 간에 자율적으로 추진할 사안”이라며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하기까지 금융당국에서 직간접적으로 대주주 책임론을 제기하며 압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당국의 속내는 건전성 위기가 불거지지 않도록 대규모 증자에 참여할 새로운 주주가 나타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표의식’이 감지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배경에는 현 정부와 KT 경영진 간의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시장보다 ‘정치논리’ 우선 뒷전으로 밀려난 혁신금융
KT 與 공세에 검찰까지 수사
금융당국 이곳저곳 눈치보다
인터넷은행 육성 전략 차질
“정권마다 기준 바뀌면 어쩌냐”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KT의 입찰 담합 의혹에 대해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황창규 KT 회장마저 정치권 불법 후원금 지원과 경영고문에 대한 고액 고문료 지급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여당은 KT가 2014년 1월 황 회장 취임 이후 정치권 인사·군인·경찰·고위공무원 출신 등 14명에게 고액의 급여를 주고 각종 로비에 이들을 활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당국으로서는 ‘변수’가 있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해명을 하고 있지만 이 같은 시나리오는 오래전부터 실현 가능성이 대두돼 왔다. 만약 검찰이 KT의 입찰 담합 혐의와 관련해 기소하지 않고 과징금을 확정할 경우 KT는 금융위가 ‘경미한 사안’으로 판단한다는 전제로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KT 경영진이 사퇴하지 않고 버티면 정치 이슈로 번져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정부와 KT 경영진 간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 운신의 폭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가 처음 공정위 조사를 이유로 KT의 케이뱅크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중단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며 “KT 경영진을 향한 여권의 공세와 검찰 수사까지 거세지면서 금융당국이 중단한 심사를 재개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시장의 논리대로만 판단하면 되는데 정무적 판단을 반영하다 보니 ‘대주주 심사 중단→케이뱅크 증자 실패→건전성 위기→대주주 교체’라는 악순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메기가 되겠다는 케이뱅크의 꿈을 금융의 정치화가 좌절시킨 것과 마찬가지다. 금융권 관계자는 “KT 경영진과 정부의 갈등관계를 잘 아는 금융당국이 독자적인 판단을 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금융당국이 이것저것 고려하다 보니 케이뱅크의 증자 실패와 이에 따른 건전성 위기로 옮아붙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에 따라 KT는 케이뱅크의 실질적 대주주가 되기 위한 유상증자 작업을 계획해왔다. 업계 선두인 카카오뱅크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6,000억원 규모의 증자가 절실했지만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갑자기 불거지면서 대주주 적격 심사가 중단됐고 예정된 증자도 실패했다. 신규 대출은 막혔다. 이렇다 보니 전반적인 부실률이 올라가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하락에 따른 건전성 위기가 불거졌다. 주목받던 케이뱅크가 갑자기 회사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케이뱅크가 단기적으로라도 어려움을 겪지 않고 견실한 신인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소규모 증자를 주요 주주 중심으로 진행할 계획”이라며 “(대주주 교체는 주주 간 자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당국의 입장을 존중하고 케이뱅크 정상화에 KT가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에는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주주 간 증자 등에 어려움이 따르면 대주주 지위까지 포기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공식화된 입장은 아니지만 케이뱅크가 중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대주주를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현재 제3 인터넷은행에 대한 예비인가 심사를 진행 중인 당국의 입장에서 국내 1호 인터넷은행의 상징성을 띠고 있는 케이뱅크가 좌초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일부에서는 2015년 예비인가 당시에는 금융권에 활력을 불어넣는 ‘메기’라며 KT의 인터넷은행 진출을 유도했다가 정치적 이슈에 엮여 있다는 이유로 적격성 심사를 중단한 것은 금융당국의 지나친 눈치 보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이 주요 시기마다 이랬다 저랬다 눈치를 보면 혁신성을 갖춘 인터넷은행이 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2015년 첫 인가 당시에는 은행법상 대주주 적격성 심사 요건에 공정거래법 조항은 없었는데 ICT 기업의 진출을 유도한다며 만든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에는 새로 추가되며 기업들의 족쇄가 돼버렸다”며 “현재 예비인가 심사를 진행 중인 제3인터넷전문은행들 가운데서도 공정거래법 이슈와 연관된 곳들이 있는데 당국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