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인 변혁 없이는 무엇을 해도 안 통합니다. 지금 필요한 건 처방약이 아니라 해독제예요.” 수년 만에 교육 담당 기자로 복귀한 지 한 달. 다시 만난 교육계 인사들은 고교 1~3학년이 모두 다를 만큼 갈기갈기 찢어진 교육 제도 앞에서 한결같이 같은 말을 읊조렸다.
최근 들어 그나마 ‘기회의 균등’에 부합할 정시 대학수학능력시험 전형 확대 같은 긍정적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들이 수능 모집 비중 확대에 먼저 반발하는 등 ‘해법’이 문제를 해결해주기는커녕 또 다른 문제의 출발이 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대학들이 수능 확대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시험이 학생 선발을 위한 잣대로서의 변별력을 답보하지 못한 지 이미 오래라는 것이다. 핵심 과목인 영어와 한국사에 이어 고1이 치르는 수능부터는 제2외국어와 한문마저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등 공정한 평가 도구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의 수능 확대 방침에 고심해온 서울대가 교과목 이수 여부에 수능 가산점을 주겠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내놓은 것도 학교들이 ‘변별력’을 보완할 안전장치에 얼마나 목말라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수시와의 시차에 따른 ‘모객’도 주요 이유다. 수시에 붙으면 수능으로 뽑는 정시에 응시할 수 없지만 정시 합격생들은 순차적으로 이동해 타 대학으로 넘어간다. 정시를 늘리면 인재를 빼앗길 확률도 높아지는 구조다. 고려대와 포스텍 등 상위권대들이 수능 기피를 주도하는 것도 ‘경쟁 대학’이라는 구도를 얹고 보면 쉽게 풀린다.
이렇듯 대학들이 반발하는 것은 수능 자체가 아니라 망가진 수능이고 대입제도 자체가 아니라 망가진 제도다. 가진 자들의 기회 점유를 방조하는 보수와 ‘부담 완화’를 내세워 입시가 경쟁 구도임을 외면해온 진보의 진영논리가 충돌하며 자체적 모순에 부딪힐 때마다 십수 년 이상 ‘땜질처방’으로 일관한 결과다.
이를 되돌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점검해본다면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 보인다. 이를테면 수능 절대평가를 중단해 평가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수시와 정시로 나뉜 대입제도를 새로 짠다, 교육과정에 위배되는 대선공약을 배제하고 교육감 직선제 등을 재검토해 교육과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 등이다.
풀면 다른 곳이 꼬이는 우리 교육이 들려주는 메시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대책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예고된 위기로 치달아도 멈추지 못할 것임을 보기에 그 울림이 커질수록 회한도 깊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