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하루 앞둔 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KBS 특집 대담 프로그램 ‘대통령에게 묻는다’에서 송현정 KBS 정치 전문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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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주년을 맞아 지난 9일 80여 분 간 진행된 생방송 대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차분하고 담담하게 각종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하지만 야당의 ‘독재자’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는 질문에는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는 등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 문 대통령의 답변을 끊고 질문을 하려는 사회자를 저지하고 답변을 이어나가는 등 은근한 기싸움도 감지됐다.
문 대통령은 “자유한국당 입장에선 청와대가 야당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정국을 끌어가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께 ‘독재자’라고 얘기를 하고 있다. ‘독재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셨냐”는 송현정 KBS 기자의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멋쩍은 웃음을 지은 문 대통령은 “다수 의석을 가진 측에서 독주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야당이 물리적 저지를 하지 못하게 하는 해법으로 패스트트랙이라는 해법을 마련한 것이다. 그래서 그 해법을 선택한 것을 가지고 ‘독재’라고 하는 것은 조금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대답했다. 답변 직후 문 대통령은 “게다가...정말...그...촛불...”이라 더듬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촛불 민심 위에서 탄생한 정부가 독재, 그것도 그냥 독재라고 하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 색깔론을 더해 ‘좌파 독재’라고 규정짓고 투쟁한다는 것은 참 뭐라고 말씀드려야 될지 모르겠다”며 답변을 마무리했다.
문재인 정부 핵심 경제정책인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부작용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묻는 질문에는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송 기자가 “최저임금 인상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논란 때문에 소득주도성장 자체에 논란이 생겨버린 국면이 됐다. 이 과정을 조금 더 다듬어갔으면 하는 후회는 없으시냐”고 질문하자 문 대통령은 한숨을 내쉬며 “그렇다. 아쉬움이 많다”고 답했다. 내년에 ‘두 자리 수’ 최저임금 인상이 무리라고 판단하느냐는 질문에도 문 대통령은 한숨을 지으며 “이건 참 답변 자체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면에 관한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도 한숨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답변에 앞서 깊은 한숨을 쉰 뒤 “일단 박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두 분 전임 대통령께서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아마 누구보다도 제 전임자분들이기 때문에 제가 가슴도 아프고 부담도 크리라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아까 말씀드린 대로 아직 재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 속에서 사면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송 기자와 서로 말을 끊으며 공방을 주고 받는 모습도 연출됐다. 송 기자가 우리 측이 북한에 제안한 바 있는 4차 남북회담의 진행 상황이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지지부진하다고 말씀을 하긴 그렇다”고 말하며 반박했다. 또 송 기자가 답변 중간에 말을 끊고 추가 질문을 하려고 하자 문 대통령은 손을 들어 이를 제지한 뒤 하던 답변을 이어가는 모습이 여러 번 포착됐다.
이 같은 대담 분위기는 청와대에서 미리 준비한 ‘공격적 인터뷰’ 시나리오의 일환이라고 알려졌다. 다소 공세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분위기가 대통령의 진솔한 답변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보수 성향의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를 마음에 들어하셨다. 사회자의 공격적인 질문에 문 대통령이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과정에서 풍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담 이튿날인 10일 청와대는 송 기자의 태도가 무례했다고 지적하는 일부의 비판 여론에 대해 “대통령께서 대담이 끝난 이후 불쾌해하지 않으셨다”며 “오히려 공격적인 공방이 오갔어도 괜찮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대담 중 나온 문 대통령의 ‘작심 발언’도 눈길을 끌었다. 대담이 시작되기 4시간 전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쏘아 올린 북한에 단호한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이런 행위가 거듭된다면 지금 대화와 협상 국면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북한 측에 경고하고 싶다”고 발언한 데 이어 “북한의 의도가 어디에 있건 북한의 행동이 자칫 잘못하면 협상과 대화의 국면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우선 우리가 경고를 하는 바이다”라고 말하며 ‘경고’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했다. 지난 4일 있었던 발사체 발사 도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유화적인 입장을 유지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문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에 확실한 경고를 주기 위한 준비된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북한과 언제든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도 불만이 있다면 대화의 장에서 불만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대북 식량지원으로 교착 상태에 빠진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