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홍기석 칼럼] 소득분배와 교육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소득격차 심할수록 교육열 높아

독립심·상상력보다 '성적' 중시

줄세우기 익숙한 사회구조 고착

악순환 끊어낼 교육해법 절실

홍기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홍기석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2014년 발표된 ‘스타일 있게 양육하기(Parenting with Style)’라는 논문에 의하면 부모의 양육 스타일과 소득분배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존재한다. 소득분배가 불평등한 나라일수록 자식 양육에 있어 ‘근면(working hard)’이라는 가치를 중요시하는 부모의 비중이 높은 반면 소득분배가 평등한 나라일수록 ‘독립심’이나 ‘상상력’과 같은 가치를 중요시하는 부모의 비중이 높은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결과에 대해 저자들은 개인 간의 소득 격차가 심한 경제일수록 부모는 자식이 나중에 저소득층으로 떨어질 위험을 줄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자식의 행동을 통제하고 교육에 집중하도록 유도 내지 강제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대졸·고졸 간 임금격차가 확대되고 대학 진학률이 높아진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설명이 제시된 바 있다. 저학력 미숙련 노동보다 고학력 숙련노동을 더 선호하는 방향으로 기술 진보가 이뤄짐에 따라 대·고졸 임금격차가 확대되자 많은 개인이 자식의 대학 진학을 선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자료를 이용한 필자의 분석에서도 대·중소기업 임금격차와 대학 진학률 간에는 상당히 강한 양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관찰됐다.

이러한 논의는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에 대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의 소득분배는 최근 다소 개선되기는 했지만 보다 장기적으로 보면 1990년대 이후 대체로 악화 추세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악화되는 소득분배하에서 자식이 하위 소득계층으로 떨어지지 않고 대기업과 같은 양질의 일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자식의 교육에 그만큼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입할 유인이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2008년 정점을 찍은 후에 상당히 하락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스타일 있게 양육하기’의 저자들에 의하면 이 또한 소득분배 악화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소득분배가 악화함에 따라 경제적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은 자녀 교육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지만 그렇지 않은 저소득층은 일찌감치 자녀 교육을 포기하게 되고 그 결과 대학 진학률이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학 진학률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교육에 투입되는 자원의 양은 더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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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체적으로 교육열이 높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교육은 이러한 순기능 외에 단순히 학생들의 줄 세우기를 위해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모든 부모와 자녀들이 공통으로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수가 제한적이라면 높은 교육열은 노동시장에서의 미스매치와 막대한 자원낭비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교육열 자체가 소득분배를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즉 소득분배 악화로 인해 교육열이 높아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반대의 인과관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업이 유능한 개인들을 채용하기 위해 활용하는 정보 중의 하나는 개인의 학력이다. 그런데 높은 교육열 때문에 개인들의 학력이 모두 비슷하게 높아진다면 기업은 누가 유능한 개인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기업은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대신에 채용 규모를 줄임으로써 정보의 부족 문제에 대응하게 된다. 따라서 소수의 개인만이 높은 임금을 제공하는 일자리에 취업하고 나머지 개인들은 다음 기회가 나타날 때까지 실업 상태가 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대기업·공기업과 같은 소위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위한 우리나라 중산층 자녀들 간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모두 죽기 살기로 교육에 매달린 결과 누가 과연 우수한 학생인지를 판단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수능성적 1점 차이로 합격 대학이 달라지고 수많은 대입 전형 때문에 누가 어떻게 어느 대학에 들어가게 됐는지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소득분배 악화가 교육열을 부추기고 높은 교육열이 다시 분배 악화를 유발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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