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관세율 인상 조치를 주고받은 데 이어 미 무역대표부(USTR)가 추가로 25% 관세를 부과할 약 3,00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 목록을 공개하는 등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투자자금이 안전자산인 금으로 급속히 쏠리고 있다. 뉴욕증시의 3대 지수는 일제히 폭락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의 골드바 수요가 급증하면서 KB국민은행은 전날부터 일부 골드바 상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은행 측은 “골드바 제조사의 일시 공급부족으로 일부 제품의 판매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골드바는 시중은행의 대표적인 실물 금 투자 상품이다. 최근까지 달러 상품으로 몰리던 투자자금이 무역전쟁 격화로 또 다른 안전자산인 금으로 쏠리면서 지난 한 달 새 금 가격은 6% 이상 급등했다. 또 다른 안전자산인 미 국채와 엔화가치도 상승세다.
증시도 요동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2.38% 하락한 2만5,324.99에 거래를 마쳤고 나스닥지수는 3.41% 폭락했다. 독일·프랑스 등 유럽의 주요 지수도 1%대 이상 밀리면서 이날 하루 사이 증발한 글로벌 시가총액은 1조달러(약 1,200조원)에 달했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30%가량 급등했다.
이날 시장을 뒤흔든 것은 600억달러어치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중국의 관세율 인상 보복조치다. 게다가 미 USTR이 최고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총 3,805개 중국산 제품 목록을 공개하면서 시장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UBS는 미국이 추가 관세 폭탄을 날릴 경우 뉴욕 증시는 두자릿수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소액투자자까지 문의 폭증...골드바 판매 두배로>
미중 무역전쟁의 격화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일부 투자자들의 관심이 달러·금 등 자산 가치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안전자산으로 옮겨가고 있다.
1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최근 1~2개월 사이 골드바 판매량이 2배 가까이 늘면서 10g과 100g 골드바 상품의 공급을 지난 13일부터 일시중단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고액자산가들의 주된 투자처로 꼽히던 골드바가 최근에는 소액 투자를 선호하는 일반 고객들 사이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며 “특히 화폐 가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실물 투자로 눈을 돌리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골드바 수요도 급격하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이 고시하는 국내 금 시세는 국제 금 가격에 원·달러 환율을 적용해 원화로 환산한 것으로 올 들어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서 국내 금 가격도 8% 이상 올랐다. 이 기간 국제 금 시세는 약 1.7% 오르는 데 그쳤지만 원·달러 환율이 6% 이상 오르며 국내 금값이 크게 뛰어오른 것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연초 이후 지지부진하던 금값이 최근 들어 반등하고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에 올 3월부터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골드바 판매량도 급증하고 있다. 3월 판매량이 전월 대비 67% 늘어난 데 이어 4월 판매량도 92%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여기에 통장으로 자유롭게 금을 입금하고 금 실물을 인출할 수 있는 신한 골드리슈 상품도 최근 들어 조금씩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이 상품은 국제 금 가격을 원화로 환산한 가격으로 적금 방식으로 금을 매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연초까지 줄어들던 계좌 수가 최근 들어 다시 늘어나며 2월 말 이후 280개 계좌가 순증했다.
달러 값이 대다수 시중은행이 연초부터 내놓은 환율 예상 밴드를 뛰어넘는 1,189원40전까지 치솟았지만 달러 투자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모른다는 게 프라이빗뱅커(PB)들의 전언이다.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의 달러화 정기예금은 이달 들어 열흘간 1만달러 가까이 증가했다. 안은영 신한PWM판교센터 팀장은 “환율이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치솟았지만 추가 상승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이 환매를 늦추고 있고 추가 투자 문의도 여전히 많다”며 “대다수 투자자가 원화 자산 비중이 높다 보니 자산 배분 차원에서도 기축통화인 달러 자산을 늘려야 한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시중 부동자금이 안전자산으로 몰리는 또 다른 배경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관련 발언에 이어 최근 정치권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화폐 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 가능성이다. 한 시중은행 PB는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불안감에 화폐 개혁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원화 자산 비중을 줄이고 달러 예금이나 주가연계증권(ELS), 보험 등으로 화폐 가치 변동성을 헤지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며 “달러 값이 예상 밴드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급등했지만 여전히 달러 자산에 대한 수요가 큰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