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미혼모 김명지씨가 아이를 안고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사진제공=인트리“가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진도 그대로 쓰시면 됩니다.”
청소년 미혼모들은 당당했다. 아니, 한부모가정의 어머니들은 당당했다.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비치는 것도 그들은 온몸으로 거부했다.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삶에 뛰어든 아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낳았고, 온 마음을 다해 기르는 똑같은 어머니라는 것이다. 미혼모가 된 이유는 다양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더욱더 당당하게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공 어린이집은 한부모와 다자녀가정에 우선 입학권을 주는데 ‘왜 아이 돌보미 서비스는 한부모가정에 대한 배려가 충분하지 않는지’ 물었다. 청소년 미혼모를 위한 주거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만 24세 이하 청소년 미혼모는 지난 2017년 기준 2,101명에 달했다. 전체 미혼모의 약 9.5%로 매년 그 비중은 늘어나는 추세다. 만 35세 이하인 상대적으로 젊은 미혼모의 비중도 35.8%로 전체 한부모가정 어머니의 다수를 차지한다. 결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변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혼자 키운다 해도 낙태가 아닌 출산을 선택하는 용감한 어머니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부모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과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5세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청소년 미혼모 출신의 김슬기(24)씨는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조했다. 김씨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며 “내 자식만큼은 내가 키우기로 생각했기 때문에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다른 청소년 미혼모인 김명지(21)씨는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을 두 달 앞둔 상황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한 남자친구와 아이를 키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은 들었다”면서도 “남자친구가 출산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나 홀로 간호조무사 과정을 준비하며 아이를 키울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청소년 미혼모 이혜은씨가 밝은 표정으로 ‘누구랑 살면 어때’라고 쓴 표어를 들고 있다. /사진제공=인트리청소년 미혼모들은 한부모가정에서도 남녀차별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6세 아이를 키우는 청소년 미혼모 출신 이혜은(24)씨는 “미혼모에 비해 미혼부의 비율이 현저히 낮은 게 사실”이라며 “남자와 여자 둘이 함께 만든 아이를 대부분 엄마들이 책임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청소년 미혼부 수는 294명으로 같은 나이의 청소년 미혼모(2,101명)의 약 10%에 불과했다. 이씨는 “미혼부는 남자가 아이를 혼자 키운다며 대단하다고 하지만 미혼모는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거나 철이 없다거나 이런 편견 섞인 말을 듣기 일쑤”라며 “한부모가정에 대한 선입견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청소년 미혼모에 대한 재정 지원을 늘렸지만 홍보 부족으로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한부모에게 지급하는 아동양육비를 기존 월 18만원에서 올해 35만원으로 증액했지만 김슬기씨는 이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청소년 미혼모에 대한 지원금이 따로 나오는지 알지 못했다”며 “신청해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미혼모들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여가부 관계자는 “청소년 미혼모 아동양육비도 다른 정부의 지원금과 마찬가지로 당사자가 스스로 신청해야 한다”며 “증액 양육비를 신청하는 미혼모들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미혼부엔 관대한 또다른 선입견 불편
“내 아이는 내가 키운다” 선택 후회없어
‘청소년 미혼모 지원금’ 몰라 못받기도
아이 돌보미 서비스도 ‘한부모’ 배려를
재정 지원이 한부모가정 정책의 핵심이어서는 안 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미혼모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한 섣부른 판단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김명지씨는 “청소년 한부모가장은 경력이 단절될 수밖에 없어 교육이나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한부모가정 당사자라면 양육비 지원 정책에 비판적일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양육지원 정책 중 만족도가 높은 아이 돌보미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한부모가정에 대한 지원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슬기씨는 “필요할 때 아이 돌보미를 신청해도 원하는 시간에 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매번 아이 돌보미가 바뀌기 때문에 아이 입장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점도 아쉽다”고 했다. 한부모가정의 경우 자녀가 한 명인 경우가 대다수라 아이 돌보미 입장에서 다자녀가정보다 보수가 적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을 꺼리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여가부 관계자는 “아이 돌보미 서비스를 신청할 때 한부모가정에 가점을 주는 등 제도적 지원을 하고 있다”면서도 “아이 돌보미 서비스의 경우 절대적으로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한부모가정에서 불만이 나온 것 같다”고 해명했다. 김슬기씨는 “공공유치원의 경우 한부모가정에 입학 우선권을 주는 혜택이 크지만 아이 돌보미 서비스는 현장에서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청소년 미혼모들은 오히려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이 해당 지원 제도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도 지적했다. 김명지씨는 “지원 신청을 하러 동사무소에 갈 때마다 오히려 공무원들에게 미혼모 지원 정책을 일일이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았다”며 “여가부에서 해당 안내책자 등을 만들어 주민센터 직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는 “우스갯소리로 주민센터나 구청에 업무를 보러 갈 때 일부러 낡은 옷을 입고 우울한 표정을 지으라는 말이 있다”며 “(한부모가정은 가난하고 우울할 것이라는) 고정관념부터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산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정부 차원에서 청소년 미혼모에 대한 정서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최형숙 인트리(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대표는 “차별적인 시선 탓에 청소년 미혼모가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동안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에 노출될 위험이 매우 높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들을 지원할 전담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부모가정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밝은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자신의 황금기를 맞바꾸면서까지 낳아 기른 아이가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금의 삶을 긍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며 아이들은 미소든, 사랑이든, 위로든 어른이 줬던 것보다 늘 몇 배로 돌려준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가 성장한 후 “내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야무진 포부도 나왔다. 김명지씨는 “제 아기가 누군가에게 미혼모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때 ‘우리 엄마는 미혼모로 나를 키우면서 대학까지 다닌 사람’이라고 당차게 반박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