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기초로 돌아가야 한다는 ‘서울포럼 2019’의 주제에 깊이 공감합니다.”
서울포럼을 찾은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한양대 등 국내 주요 대학 총장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대학교육의 변화로 가장 먼저 ‘기본의 회복’을 꼽았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응용과학 투자로 고속성장을 이뤘지만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호기심과 창의력이 필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리드하려면 기본·여유·협업 등 그간 무시하고 지나친 기본 가치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100개의 연구 프로젝트 중 98개가 성공하는 것이 한국의 가장 큰 문제”라 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시간주립대 생리학과 교수 등 포럼 기조 강연자들의 조언을 국내 고등교육의 선봉에 선 주요 대학 총장들이 가장 먼저 이해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어 총장들은 ‘융합교육의 확대’와 ‘대학원 중심의 연구대학 확립’ 등을 대학교육의 변화를 위한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총장들은 “대학교육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에 미래란 없다”고 문제의식을 같이하면서 리더십·도전정신·인성·투명성 등 인문학적 가치 회복을 가장 먼저 주목했다. 기업들의 인문학과 홀대 속에서도 주요 대학은 전교생이 함께 듣는 기초교양 부문을 최근 들어 크게 강화하는 등 인간 본연의 탐구에 힘을 싣고 있다. 전인교육을 지원할 사회봉사단, 동아리 활동 등 각종 비교과 교육도 확대일로에 있어 비교과 활동에 증명서를 발급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정진택 고려대 총장은 “새 시대에는 고속 직진이 아니라 이곳저곳 주변을 돌아보며 느리게 탐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한 우물을 파도 우물의 위치, 우물과 마을 구성원의 관계 등을 파악하고 머릿속에 그려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창의력 함양도 대학에 중요한 과제다. ‘협업’과 ‘융합’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합하려면 어느 때보다 ‘물고기 낚는 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곧 낡아질 기존 학문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평생을 살아갈 자산이 될 수 없기에 암기가 아닌 ‘How to’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학내에) 우등생은 많은데 리더는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이어 “남을 돌아볼 수 있어야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볼 텐데 나눔의 정신이나 창의력 등은 교육과정에서 빠져 있다”며 “20년 물든 사고를 한 번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대학이 달라지면 사회도 바뀐다는 생각에 기본 가치 함양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 스타트업을 주도하는 이스라엘에서는 질문 위주의 교육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부터 교사와 학생 모두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가에 주목한다. 글로벌 기초과학 연구를 주도하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도 가장 기발한 연구 과제를 수행한 학자를 소장으로 선출하는 관행이 있다. 하지만 대학 입학 이전까지 국내 교육이란 조용히 앉아 암기하는 것에 가깝다. 신동렬 성균관대 총장은 올 초 부임하자마자 ‘학생성공센터’를 개소했다. 신 총장은 “단순한 진로 소개를 넘어 학생들이 부딪힐 문제들을 함께 논하며 자기주도적 배움을 체득하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고려대는 ‘자유·정의·진리’라는 창학 이념을 16주 분량의 온라인 강의로 꾸며 집에서 각자 학습하게 하고 강의실에서는 교수와의 Q&A 및 조별토론을 실시하는 등 창의력 훈련을 전교생 필수 강의로 운영하고 있다.
총장들은 문·이과 장벽 제거, 기초과학과 융합과학의 통합 등 융합교육 확대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협업과 더불어 학문 간 융합이 성공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되기에 전보다 다양한 학문을 접해 호기심과 창의력을 개발하고 자기주도적인 미래를 그리도록 하겠다는 뜻에서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뇌과학 연구를 들여다보니 문과 학부생일 때 배웠던 심리학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며 “생활 전반을 기술화하는 융합의 세계에서 중요하지 않은 학문이란 없다. 대학교육도 다양성을 함양하되 자기주도적으로 선택 학습하도록 안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원 중심의 연구대학 확립에도 힘을 실어야 한다고 총장들은 강조했다. 학부에서는 다양한 학문을 접하며 기초 소양을 닦고 대학원 실험실 단계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해야 가장 유의미한 기술혁신 성과가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 단계에서 교수 및 원생이 연구 과제 중심으로 모일 때 학과 간 융합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지고 기술 사업화의 효과도 커질 것이라고 총장들은 답했다.
이를 위해 대학의 스타트업 육성도 사업화 위주의 대학원 중심 사업단 지원과 학부생 단위의 스타트업 교육 등 ‘투트랙’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총장들은 강조했다. 정 총장은 “학부생 대상 기술 창업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라며 “재학 시절 숱한 실패에 노출돼야 도전정신의 의미를 되새기며 창조적 자산을 보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