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 포터 팔머와 환불제, 자선의 추억

1826년 출생, 한국과도 인연




소비 부진 속에서도 성장세를 이어가는 홈쇼핑. TV 홈쇼핑의 시장 규모는 지난해 10조원을 넘어섰다. 만약 반품과 환불이 없다면 성장이 가능했을까. 반품과 환불은 근대의 발명품이다. 대량생산·소비 시대 이전에는 매매 대상과 수량이 적어 환불 수요 자체가 적었다. 최초의 환불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으나 자료로 확인 가능한 시기는 지난 1861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존 맥릴런의 역저 ‘시장의 탄생(2007)’에 따르면 시카고 트리뷴지의 광고가 시초다.

광고주는 당시 35세였던 백화점 체인 마셜필드앤컴퍼니의 창립자 포터 팔머(사진). 그는 이런 광고를 실었다. ‘구입한 물건의 가격·품질·스타일 등 어떤 면에서든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갖고 오면 기꺼이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환불제는 이윤을 깎아 먹을 것이라던 고정 관념을 깬 팔머는 큰 성공을 거뒀다. 기업인이며 박애주의자, 백화점과 호텔의 선구자로도 기억되는 팔머는 평생토록 남들과 다르게 판단하고 결정한 인물이다.


뉴욕의 퀘이커교도 부농 집안에서 1826년 5월20일 태어난 팔머는 대학 진학 권유를 마다하고 18세에 뉴욕의 잡화상 점원으로 일하며 2년 뒤 판매 총책임자로 올랐다. 독립해 자기 점포를 꾸려가던 그는 26세에 시카고로 이주하는 단안을 내렸다. 인구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눈여겨본 팔머는 초기 백화점 격인 대규모 상점을 열고 마케팅 방법도 바꿨다. 남성 중심이 아니라 여성 위주로 상품을 구성해 곧 시카고의 거부로 떠올랐다. 남북전쟁에서는 북군에 모직과 의류를 납품하며 부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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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화제를 뿌렸다. 44세에 시카고 유지의 딸인데다 학교에서 수석을 도맡았던 21세 여성 베르타를 아내로 맞았다. 결혼 선물로 준 팔머호텔은 우리와도 인연이 있다. 팔머 부인은 미국인 기자를 통해 명성황후에게 환등기를 보내 조선이 시카고박람회(1893년)에 참가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고 망국 직전 조선인들은 이 호텔에 많이 묵었다고 전해진다.

팔머 부부는 미술품 애호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유럽의 미술품들을 고가에 사들여 가격 거품을 만드는 미국 졸부의 하나’라는 혹평까지 받았으나 오늘날 미국의 미술관들은 팔머 가문을 비롯한 부자들에게 기증받은 미술품 덕분에 반사이익을 누린다. 시카고 대화재 직후 도시 재건에 거액을 기부한 덕에 팔머라는 이름은 아직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돈은 자손만대 전하기 어렵지만 선행을 베푼 부자에 대한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는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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