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8년 5월22일, 미 해군 대서양 잠수함 사령부에 비상이 걸렸다. 핵추진 공격용 잠수함 스코피언호(USS Scorpion·SSN-589·사진)와 연락이 끊겼기 때문이다. 엿새 전 스페인 서부 로타 해군기지를 출항한 스코피언호는 4개월여의 지중해 파견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교신 두절 일주일 후부터 모항인 노퍽의 지역 언론에 입항해야 할 잠수함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기사가 실렸다. 미 해군은 6월5일 ‘실종으로 추정된다’는 발표를 내보냈다.
미 해군은 연락 두절 즉시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스코피언호가 마지막으로 보낸 통신문이 ‘소련 잠수함 추적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소련 해군이 지중해에 ‘노벰버급’ 고속 공격원잠을 배치했던 상황. 미 해군은 소련 잠수함의 공격으로 격침당했을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프랑코 총통 치하의 스페인 정부도 관련 보도를 통제했으나 속이 탔다. 스코피언호에는 한 방으로 소련 함대를 무력화할 수 있는 핵 어뢰가 탑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핵 어뢰가 터지거나 동력원인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유출될 가능성에 떨었다.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 사고 6개월 뒤 대서양 아조레스제도에서 740㎞ 떨어진 지역의 3,000m 심해에서 잔해를 찾았으나 사고 원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어뢰가 함 내에서 작동해 강제로 발사됐는데 스코피언의 항적을 따라 돌아와 침몰했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부실 정비 탓이라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1960년 취역한 스코피언호는 미 해군 최초의 눈물방울(teardrop)형 선체에 강력한 원자로를 갖춰 시속 30노트 이상의 고속을 자랑하던 야심작이었으나 문제도 많았다.
무엇보다 정기 수리(overhaul)가 부실했다. 고질적인 소음을 줄이고 새로운 통신 장비를 설치하는 데 36개월이 필요했으나 빨리 내보내려고 9개월에 마쳤다. 예산도 오버홀 평균 비용의 7분의1만 투입했을 뿐이다. 응급처치만 받은 격인 스코피언호는 실종 직전부터 잦은 사고에 시달렸다. 조금만 깊이 잠항하면 각종 밸브가 새고 터지기 일쑤여서 심도 150m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심도 파악을 잘못해 깊은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압궤당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 해군은 돈과 시간을 들인 군수 지원만이 안전을 담보한다는 교훈을 쓰라리게 얻었지만 실종자 99명은 영원히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잠수함 발명 이래 독일 해군 3만2,000명을 비롯해 장병 6만여명이 산화했다. 명복을 빈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