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는 1886년 네덜란드를 방문했다가 해안선만큼이나 길게, 줄줄이 늘어선 꽃들을 보고 황홀경에 빠졌다. 17세기 유럽인들이 튤립 때문에 미칠만 했다. 피지도 않은 희귀종 구근을 선점하기 위해 집과 땅을 저당 잡혔다가 순식간에 가격이 폭락한 ‘튤립파동’을 일으킨 바로 그 꽃들이다. ‘색채의 마술사’ 모네였음에도 네덜란드의 꽃밭을 물감으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모네는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경이롭게 아름다운” 꽃밭을 묘사하고 싶었으나 “변변찮은 물감 색 때문에 가난한 화가는 미칠 지경”이라고 털어놓았다. 그가 옳았다. 최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작품 한 점 값이 1,300억원을 넘긴 모네의 그림도 탁월하지만 자연 속 진짜 꽃이 펼쳐 보이는 아름다움에 비할 수는 없다.
쾨켄호프는 전 국토의 3%가 꽃 재배지역인 네덜란드가 가장 자랑하는 튤립 생산지다. 부엌을 뜻하는 쾨켄(Keuken)과 정원이라는 뜻의 호프(Hof)가 합쳐진 지명은 과거 이곳이 귀족들의 연회장으로 사용된 정원임을 알려준다. 수도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을 나서자마자 쾨켄호프로 직행하는 셔틀버스 안내판이 보인다. 사순절 기간을 정점으로 이달까지 이어지는 ‘튤립축제’ 기간에는 26유로의 티켓 한 장으로 쾨켄호프 입장권과 공항까지 오가는 왕복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버스로 30~40분 달려 도착하는 쾨켄호프는 행정구역상 리세 지방에 위치해 있다. 반경 20㎞의 들판에서 꽃을 재배하니 동네 전체가 꽃밭이다. 항공사진으로 내려다보면 해안선과 나란히, 혹은 수직으로 도열한 색색의 튤립이 장관을 이룬다. 연평균 140만명 이상, 그중 80%는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쾨켄호프로 향하는 이유다. 네덜란드 화훼위원회에 따르면 800종류 이상의 튤립·히아신스·수선화·카네이션·백합 등 총 700만본(알뿌리 화초를 세는 단위)이 3월부터 6월까지 꽃을 피운다. 쾨켄호프가 ‘유럽의 정원’으로 불리고 ‘유럽의 봄이 쾨켄호프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이유다. 쾨켄호프의 중앙에 28만㎡ 규모로 조성된 정원은 1949년부터 일반에 개방됐다.
쾨켄호프의 꽃을 형용하기란 모네가 변변찮은 자신의 물감을 탓한 것만큼이나 구차하다. 묘사하고 설명하려 들지 말고 그냥 보고 느끼고 즐기고 아쉬우면 내년을 기약하는 게 낫다. 암스테르담 시(市)가 관광세 부과 등의 방법을 써 관광객 억제를 모색할 정도로 방문객이 넘쳐나는데 분명한 것은 쾨켄호프의 꽃밭에 도착하면 누구나 자연스러워진다는 사실이다. 점잔빼던 사람들도 꽃 앞에서는 큰 소리로 웃고, 유치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잔디 위에 벌렁 드러눕고는 한다. 그 자체로 생명이요 빛이요 색이다. 한순간도, 단 한 송이도 같은 모습이지 않은 천변만화의 아름다움이다.
자연의 조화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던 인간은 튤립을 개량하기 시작했다. 파미르 고원이 원산지인 튤립은 페르시아인들의 터번(Turban)과 비슷해 튤립으로 불리게 됐고 오스만제국(터키)이 영토를 넓힐 때 함께 전파됐다. 1592년에 식물학자 카롤루스 클루시우스(1526~1609)가 튤립 구근을 선물받아 이듬해 네덜란드에 처음 들여왔다. 1633~1637년에 극에 달했던 튤립파동은 개량종 희귀 튤립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에서 비롯됐다.
쾨켄호프 정원에서 만나는 다양한 개량 튤립은 꽃놀이의 별미다. 바깥쪽 꽃잎과 꽃받침이 진홍색이고 그 안에서 피어나 위로 솟구친 꽃송이가 하얀색인 튤립의 이름은 ‘아이스크림’이다. 소복하게 담은 먹음직스러운 아이스크림을 닮았다. 진붉은색 꽃잎 가장자리가 프릴처럼 생긴 튤립은 ‘태평양의 진주’라 불린다. 꽃술이 자리한 안쪽이 노란색인 게 반전 매력이다. ‘대륙식’이라는 이름의 튤립은 잘 익은 포도주색이 고혹적이다. ‘로마제국’ 튤립은 붉은색 꽃잎에 하얀 테두리가 있어 고대 로마 제국의 황제의 관을 상상하게 만든다. 초록과 주황이 뒤섞여 어디까지가 꽃이고 어디부터가 잎인지 모호할 지경인 튤립도 있다.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칼처럼 너무나 자유분방한 꽃이라 이름표를 들여다보니 ‘예술가’이다.
방사형으로 꾸며진 쾨켄호프 정원은 걷다가 지칠 때쯤 되면 실내정원이 쉴 곳을 제공한다. 토끼 캐릭터 미피(Miffy)의 나라인지라 온통 미피로 가득한 오두막집도 있고 해안 쪽에는 네덜란드의 전통 풍차도 마련돼 있다.
푸념했던 모네는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한 그림 몇 점을 남기고는 프랑스 남부 지베르니로 돌아가 평생 정원을 가꾸며 지냈다.
사실 네덜란드는 거장의 고향으로 더 유명하다. 쾨켄호프의 감동을 안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면 시내 중앙부에 위치한 미술관들을 돌아보면 좋겠다. 국립 라익스미술관에서는 네덜란드가 낳은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1606~1669)의 서거 350주년 대규모 전시가 열리고 있다. 손바닥 반 만한 종이에 정교한 선으로 그린 세밀한 초상화부터 그 유명한 ‘야경’까지 볼 수 있다.
또 다른 네덜란드의 천재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의 ‘우유 따르는 여인’과 ‘편지 읽는 여인’을 덤으로 볼 수 있는 꿈같은 미술관이다. 라익스미술관과 광장형 공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엄청난 근현대미술 소장품으로 유명한 암스테르담 시립 스테델레이크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그 옆이 반고흐미술관이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자화상’들과 ‘해바라기’ ’노란집’ ‘아를의 침실’을 비롯한 대표작들이 이곳 소장품이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의 득남을 축하하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얗게 핀 ‘아몬드 꽃’을 그렸고 그 그림의 주인공인 조카 빈센트 빌렘이 반고흐재단을 설립해 미술관까지 짓게 했다. 자연과 예술이 꽃처럼 아름다운 네덜란드다.
/글·사진(암스테르담)=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