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으로 대변되는 중소 음식점업(이하 음식점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을 신청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대기업 음식점(이하 대기업)과 대립 관계를 유지하는 게 경영난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판단에서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과다 출점 경쟁과 온라인 배달 확대 등 갈수록 어려워지는 영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대기업을 파트너로 삼아 영업 경쟁력을 키우는 게 효과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간 동안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상생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결실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6년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던 음식점업은 △한식 △중식 △일식 △서양식 △기타 외국식 △분식·김밥 △그 외 기타 음식점업 등 7개로 구성된다. 중기 적합업종은 대기업의 사업 확대를 막아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음식점업의 경영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23일 본지가 한국외식업중앙회의 자료를 단독 입수한 바에 따르면 외식 사업자는 지난 2012년 62만5,000명에서 2017년 72만명(추정)으로 증가했다. 수익성도 마찬가지다. 2016년 기준 외식 사업자는 67만5,000개였는데 연 매출액 1억원 이하인 곳이 46.3%에 달했다. 외식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사업자가 과밀하고 업종 간 경쟁이 심해진 결과”라며 “사업자 절반이 소규모 업소라는 점도 산업의 영세성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진단했다. 폐업률을 살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숙박·음식점업의 5년 생존율(2016년)은 18.9%로 전체 산업 평균치(28.5%)를 10%포인트나 밑돌았다.
그러나 음식점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을 신청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앞서 중기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된 서적 및 잡지류 소매업, 중고자동차 판매업, 자동판매기 운영업, 제과점업 등 16개 업종·품목은 생계형 적합업종을 신청했다. 생계형 적합업종을 침범하면 시정 명령, 이행강제금 부과, 형사 처분 등 강제적인 조치가 따른다. 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여러 차례 비공개 공청회를 열고 음식점주들의 의견을 청취했다”며 “6년간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가 풀릴 경우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중기 적합업종 지정 기간 대기업이 권고를 잘 준수해 대기업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분위기가 컸다”며 “대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점주들은 오히려 앞으로 더 많은 협업 기회를 얻기를 원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CJ푸드빌은 2016년 대기업 최초로 외식업중앙회와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소상공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문교육을 진행해오고 있다. 6년간 음식점업 내 대기업은 중기 적합업종의 권고를 위반한 사례가 없었다는 전언이다. 지난해 1월부터 SBS에서 방영을 시작한 ‘백종원의 골목식당’ 프로그램의 영향도 컸다는 전언이다. 이 프로그램의 흥행으로 경영난의 원인 중 하나는 대기업과의 경쟁 못지않게 조리·위생·마케팅 등 스스로의 영업방식이 문제였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는 자연스럽게 대기업을 경쟁자가 아니라 경영 컨설팅 파트너로 삼아야겠다는 필요성을 높였다.
음식점업은 오는 29일 CJ푸드빌·신세계푸드·아워홈 등 22개 대기업과 상생협약을 맺고 대기업-동반위-외식업중앙회 3자 간 상생협의체를 만든다. 상생안에는 중기 적합업종에 준하는 수준의 권고안도 담긴다. 이로 인해 대기업의 사업 확장은 중기 적합업종 지정과 마찬가지로 제한되지만 법적 규제(생계형 적합업종)로 이 상황을 막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더 나아가 22개 대기업들은 외식업중앙회 회원으로 가입해 다양한 경영 정보를 다른 회원과 공유할 방침이다.
이미 대기업은 음식점들과의 구체적 상생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CJ푸드빌은 “외식업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외식업중앙회의 기념비적인 결정을 환영한다”면서 “앞으로 외식업중앙회와 체결하는 상생협약을 철저히 준수해 상생과 동반성장의 가치를 실현해가는 데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신세계푸드는 소규모 음식점을 운영하는 업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위생 관리와 경영 컨설팅을 돕기 위한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식품안전센터의 실험분석기능을 연계해 점포 안전, 위생 교육 등에 도움을 준다는 구상이다. 아워홈은 전담 지원인력 구축, 상시 소통채널 가동 등 외식사업 운영 전반의 다양하고 심층적인 지원을 통해 상생효과를 높일 방침이다. 청년창업 활성화의 일환으로 현재 진행 중인 공유가치창출(CSV) 활동을 계속 추진하는 동시에 시장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아워홈 TFS 아카데미’를 포함한 파트너사들과의 상생협력도 더욱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음식점업의 이번 결정이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의 실효성 논란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골목상권 보호를 강제적으로 막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과 일반 국민의 소비권을 뺏고 내수시장과 업체의 경쟁력을 낮춘다 혹은 기업 간 차별이라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중기 적합업종도 그동안 이러한 논란이 꼬리표처럼 붙었다.
대기업 관계자는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역차별 논란 등을 비롯해 법으로 강제할 경우 너무도 많은 부작용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며 “생계형 적합업종의 실효성 논란이 다른 업종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상생협력연구본부장은 “대기업과 협의체를 구성하고 서로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며 “정부가 나서거나 규제로 갈등을 풀기 보다는 협의체로 서로 논의해 상생방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택시업계에서 불거진 ‘타다 논란’처럼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갈등이 일어날 것”이라며 “법보다는 이해관계자가 서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모범사례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중소벤처기업부가 생계형 적합업종이 자리 잡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할지도 주목된다. 박영선 장관은 취임 후 중기부 철학을 ‘상생과 공존’으로 제시했다. 이후 네이버·포스코와 같은 대기업과 자발적 상생협약을 맺었다. 29일 음식점업과 대기업의 상생 협약식에는 박 장관을 비롯해 권기홍 동반위 위원장, 최승재 한국소상공인연합회 회장, 제갈창균 한국외식업중앙회 회장, 대기업 관계자 등 100여명이 참석한다.
/양종곤·김현상기자 ggm1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