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4분기 1,000억원대 영업적자를 내며 16분기 연속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대상선이 기름값과 용선료를 낼 돈이 없어 채권단으로부터 또다시 긴급자금을 수혈받았다. 지난해 10월 말 자본잠식 해소를 위해 1조원의 자금을 지원받은 지 불과 7개월 만으로 채권단 지원 없이는 배를 운항하면서 치러야 할 기본적인 운영 경비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정부가 세계 7위 국적선사인 한진해운을 파산시키면서 하나 남은 국적선사인 현대상선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같은 조치가 오히려 회사의 모럴 해저드를 부추기고 자구 노력을 더디게 하는 역효과를 불러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본지 5월2일자 11면 참조
23일 채권단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전날 1,000억원 규모의 사모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했다. 만기가 2049년인 영구채로 1대 주주(13.05%)인 산업은행과 2대 주주(4.42%)인 한국해양진흥공사가 각각 500억원씩 인수하기로 했다. 채권단이 현대상선에 신규 자금을 지원한 것이다.
현대상선은 조달한 자금을 용선료와 연료비에 사용하기로 했다. 배로 화물을 운송할 때 발생하는 기본 경비마저 채권단에 손을 벌린 것이다. 해외 선주로부터 선박을 빌려 쓰는 대가로 내는 용선료와 벙커C유 등은 모두 달러로 결제한다. 업황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최근 급등한 유가와 환율은 16분기 연속 적자 행진 중인 현대상선에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올 1·4분기 1,057억원의 영업손실로 1년 전보다 적자 폭은 줄어들었지만 당기순손실은 1,758억원으로 전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해운업계의 관계자는 “미중 무역분쟁의 여파로 물동량 감소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올라 현대상선 입장에서는 고민이 클 것”이라며 “기름값과 용선료를 내지 못해 채권단에 손을 벌린다는 건 아직까지 독자적인 영업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산은 등 채권단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금융의 논리로만 접근하면 독자 경쟁력이 없는 회사에 대한 지원을 끊는 게 맞지만 정부가 지난해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을 세우며 현대상선을 살리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울며 겨자먹기식’ 지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물동량이 회복되면 현대상선의 경영이 개선돼 채권 회수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희박하다는 게 해운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영업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초대형 선박이 순차적으로 인도되는 내년 2·4분기까지는 지속적인 혈세 투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대상선은 정부가 하나뿐인 국적선사를 살리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내비치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상선은 2016년 8월 대주주가 산은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현대증권, 현대택배, LNG 운반선 등 계열사 매각 등 자구노력에 나섰지만 이후에는 이렇다 할 자구노력이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일부 임직원들의 퇴직금 축소, 1TEU(6m짜리 컨테이너 1개)당 50달러 손익개선 운동, 해운 얼라이언스(2M) 협력 강화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애초에 세계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을 파산시키고 15위인 현대상선을 살리기로 할 때부터 이 같은 상황은 예견됐다”면서 “국민의 혈세가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현대상선이 자구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