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중소기업정책자금 부실률이 2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악화로 수입이 줄어드는 반면 인건비나 원자재 등 비용은 늘면서 정책자금을 빌린 기업들의 상환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더구나 지난 2년간 30% 가까이 최저임금이 오르며 영세 중소기업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만큼 정책자금 부실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 확실시된다. 27일 본지가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실을 통해 단독 입수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최근 5년간 정책자금 융자 부실률 현황’에 따르면 중기정책자금 전체 부실률은 2014년 2.1%에서 2017년 3.6%, 지난해에는 3.8%까지 치솟아 5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중기정책자금은 초기 기업이나 재창업기업·경영애로기업·소상공인 등의 경영을 돕기 위해 정부가 제공하는 시설운전자금이다. 올해 기준으로 추경 포함 약 4조780억원이 잡혀 있으며 중진공이 운용한다. 경영환경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기업을 돕기 위해 운용되지만 부실률이 짧은 시간 내 2배나 오른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불경기 지속에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영세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가중됐고 이들의 상환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처럼 부실률이 오르면서 중진공이 더욱 보수적으로 자금을 집행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미 초기 창업기업들 사이에서는 “불경기와 연대보증 폐지 등의 영향으로 중진공이나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현금 흐름을 깐깐하게 따지기 시작했다”는 불만이 나온다. 여기에다 자금 상환이 2~3년 시차를 두고 이뤄지는 만큼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진행된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이 내년 이후 가시화되면 부실률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은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산업의 가장 약한 고리인 영세 중소기업으로 쏠리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자금의 부실률이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상환능력 떨어지자 자금집행도 깐깐...재창업 기회마저 줄어
[부실률 높아지는 중기정책자금]
‘재도약기 기업’ 지원자금 부실률은 4.6%로 급등
2년간 최저임금 29% 올라 2~3년 후엔 더 나빠질듯
“타깃 초기 中企에 맞추되 이자율 시장 수준으로 높여야”
경기도 파주에서 욕실용품을 만드는 A사의 이인오(가명) 대표는 지난 4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 재창업자금을 신청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재창업자금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진공을 통해 제공하는 중소기업 정책자금 중 하나다. 재기 기업인이나 폐업 경험이 있는 창업자에게 지원하는 것으로 기술등급을 위주로 심사를 진행하는 게 특징이다.
이 대표는 지난 15년간 20억원을 들여 시제품을 개발했고 특허 3종, 디자인특허 3종, 상표권 1종까지 등록한 상태였다. 생산 직후 물건을 납품할 대리점까지 5~6곳 확보했다. 직원이 있어야 자금 받을 확률이 높다는 말을 듣고 직원 2명을 신규 채용했다. 하지만 중진공 측이 ‘생산설비가 미흡하다’ ‘제품 관련 기술인증이 안 됐다’는 이유를 내걸며 재창업자금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게 이 대표의 주장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채무조정을 밟으면서 지난 2011년도에 중진공에서 빌렸던 자금을 상환하지 못한 게 발목을 잡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재창업자금 자체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 기업인을 도우려고 만든 건데 중진공에서는 재창업 기업인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같다”며 “기업인 사이에서는 중진공이 부실률을 관리하기 위해 우리처럼 한 번이라도 실패한 기업인은 도외시하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다”고 하소연했다.
27일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실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경기 악화와 인건비 등 ‘이중고’로 인해 중소기업 정책자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이 29%나 오르면서 2~3년 이후 도래하는 자금 상환을 감당하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이 늘어나 부실률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점쳐진다. 이 중에서는 이 대표처럼 사업 여건을 갖췄음에도 ‘실패’라는 ‘낙인 효과’로 정책 자금을 지원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인건비 리스크와 불경기 지속이라는 복합 요인이 정책자금 부실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정책의 수혜자인 중소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비용 상승·불경기→경영난 가중→부실률 상승→자금조달 여건 악화→불경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벌써 진입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서울경제가 김삼화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중진공의 ‘최근 5년간 정책자금융자 부실률 현황’에 따르면 2014년 2.1%에 머무르던 중기 정책자금 부실률은 이듬해 3.4%로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3.8%까지 치솟았다. 부실률 증가세는 재도약기 기업군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중진공은 자금 지원 대상에 따라 △창업기 △성장기 △재도약기로 중기 정책자금을 분리하고 있다. 이 중 재도약기 기업에는 긴급경영안정자금과 재도약지원자금이 포함된다. 재도약기 부실률은 2014년 3.3%에서 2015년 4.7%로 급증했다가 그 이듬해에는 2.8%로 급감했다. 하지만 2017년에는 3.6%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4.6%대로 상승했다. 재도약기 기업은 현금흐름이나 신용등급, 고용수준 등 모든 지표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창업·성장기 자금 부실률도 전반적으로 증가세다. 창업기 부실률은 2014년 2.3%에서 2018년 3.4%로 증가했으며 성장기 부실률은 같은 기간 1.6%에서 3.5%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처럼 중기 정책자금의 부실률이 오른 1차 원인으로는 불경기가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이나 재창업기업처럼 ‘시중은행에서 자금을 조달받기 힘든 업체’, 즉 매출이 뚜렷하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중기 정책자금이 공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영세기업일수록 경기가 부채 상환 여력에 영향을 주는 만큼 정책자금 부실률과 경기요인의 ‘상관관계’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기 정책자금은 영세기업을 위한 일종의 사회적 안전망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인건비와 원재료 등 고정비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중진공에 따르면 지난해 중기 정책자금을 받은 기업 가운데 대부분은 기계금속(37.1%), 섬유화학공업(15.1%), 유통(13%) 등이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문제는 지난해와 올해 최저임금이 각각 16.3%, 10.9% 상승하면서 부실률이 오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데 있다. 부실률은 보통 자금 상환 시기를 기준으로 책정한다. 이로 인해 2~3년 시차를 둔 내년 이후부터 인건비 인상의 후폭풍이 가시화하면서 정책 자금을 상환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많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홍순영 한성대 특임교수는 “기업이 성장하고 존속하려면 수입을 극대화하고 비용은 극소화해야 한다”며 “그러나 주력 업종이 쇠퇴하고 내수가 위축되면서 국내 중소기업 경기가 좋지 않은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으로 비용 부담은 늘어나고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정책자금 상환 여력마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추경도 부실률 인상의 요인으로 꼽힌다. 추경예산이 늘어날수록 심사에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6,800억원 이상의 추경을 집행해왔다. 특히 2016·2017년에는 각각 1조원과 1조500억원의 추경이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부실률이 올라가면서 정책금융기관의 자금운용 행태가 더욱 보수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박진서(가명) 대표는 “대표들 사이에서도 중진공이나 신용보증기금이 요즘 들어 재무건전성이 높은 기업에만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며 “불경기와 인건비 상승, 연대보증 폐지 등의 영향으로 정책금융기관에서 공격적으로 건전성 관리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업계와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번 기회에 중기 정책자금 구조를 전면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중기 정책자금 이자율을 시중금리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 중기 정책자금 이자율은 2~3%선에서 운영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시중금리에 맞춰 중소기업 정책융자를 제공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중기정책자금이 시혜적인 성격이 강해 도덕적 해이에 취약한 편이다. 정책 타깃을 초기 중소기업에 맞추되 이자율은 시중금리 수준으로 올려 ‘받을 능력이 있는 기업만 받게끔’ 유도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정책 융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초기 중소기업 자금시장 구조를 민간 투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리콘밸리 등에서는 민간투자 중심으로 초기 기업에 유동성이 들어오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내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짚었다.
‘연대보증 폐지’의 역설
[부실률 높아지는 중기정책자금]
“창업 더 쉬워질거라더니...지역신보 보증 여전·대출문턱 높아져”
서울 동대문구에서 의류업을 하는 김영희(가명)씨는 지난달 서울신용보증재단에 보증을 신청하러 갔다가 “남편분이 연대보증을 서줘야 신용보증을 해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김씨는 사실상 ‘명의’만 빌려주고 실제 운영은 남편이 하는 게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김씨의 남편은 원래 섬유소재와 의류를 동시에 제작하는 일을 했지만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의류업을 포기했다. 대신 그의 배우자인 김씨가 개인사업자로 창업하며 사업을 이어받았다. 서울신용보증재단 관계자는 김씨에게 “남편이 없으면 혼자서 사업을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한 만큼 두 사람 모두 사업에 관여된다고 볼 수 있으니 공동사업자로 등록하고 남편분이 연대보증을 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27일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실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신용보증재단중앙회는 김씨의 사례처럼 여전히 연대보증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에서 재창업자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졌던 연대보증 폐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공공기관에서 연대보증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김삼화 의원실이 신보재단중앙회로부터 받은 ‘연대보증 운용기준’에 따르면 각 지역 신보재단은 실제 경영자가 따로 존재하는 경우 대표자와 실제 경영자가 연대보증을 서게끔 규정하고 있다. 대표자가 이름만 걸어놓고 경영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차단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이를 ‘연대보증’을 통해 규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보재단중앙회 관계자는 “우리도 다른 방식으로 도덕적 해이를 예방할 수 있다면 연대보증을 쓰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다른 정책적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연대보증 폐지로 정책기금 부실률이 높아지자 오히려 재창업자금을 받기 어려워졌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서울 양천구에서 제조업을 하는 유영화(가명)씨는 지난해 8월 재창업 이후 4개월 만에 매출 8,900만원을 벌어들였지만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재창업자금을 받는 데 실패했다. 유씨는 “중진공 직원이 ‘연대보증 폐지로 인해 신용등급 우선순위에 따라 지원하게끔 돼 있어 우리 같이 부도난 경험이 있는 회사에는 지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모 교수는 “향후 연대보증 폐지로 정책자금 부실률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며 “연대보증 폐지가 보수적인 자금 운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