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안 되는 걸 되게 하려다 사달 날라

최형욱 문화레저부장

보수와 차별화된 진보 '유산' 집착

족보에도 없는 '소주성' 밀어붙여

잿더미된 아르테미스 신전처럼

한국 기업·경제 황폐화될까 우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오는 수학 난제 가운데 ‘3대 작도 불가능 문제’라는 것이 있다.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만 가지고 정육면체 부피를 두 배로 늘리거나 어떤 크기의 각을 3등분하거나 원의 넓이와 같은 정사각형을 그릴 수 있느냐는 문제다. 수학계 결론은 ‘불가능’이다.

수학자들은 악명 높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350여년 만에 풀어낼 만큼 집요하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른 대다수 학문은 해결 가능성에만 매달리는 반면 수학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명제도 증명 대상이다. 이는 가장 엄밀한 학문적 언어체계를 가진 수학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어느 사회나 ‘하면 된다’는 구성원의 자신감을 북돋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구호이다.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이끈 정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해도 안 되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나아가 어떤 조건과 자원이 정해진 사회 현실에서 ‘해도 안 되는 일’이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무리하게 추진하다가는 사달이 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족보’ 없는 경제실험을 밀어붙이고 있다. 성장률이 떨어지고 가계소득과 질 좋은 일자리가 줄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있는데도 마이동풍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나 청와대 인사들은 왜 고집을 피우는 걸까. 속내는 잘 모르겠지만 ‘유산(legacy)’에 대한 집착이라고 본다. 젊은 시절 민주화를 이뤄냈으니 이제는 통일과 사회적 대개조를 죽기 전 자기 세대가 완성해야 할 임무로 보는 듯하다.


물론 일반인도 그러한데 지도자라면 후세에 자신만의 유산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이다. 영국 철학자인 스티븐 케이브는 ‘죽고 싶지 않다’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 종교나 예술·과학 등 인류 문명의 원동력이었다고 설명한다. 유산 남기기는 육체의 영속, 부활, 영혼 개념 등과 더불어 불멸을 향한 한 방법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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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려는 욕망은 현실 속 죽음도 초월한다. 수치스러운 삶을 살기 싫어서, 혹은 대의명분을 위해 죽음을 택한 역사나 신화 속 인물은 수없이 많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전쟁에 참전하면 “불멸의 명예를 얻되 요절할 것”이라는 어머니 테티스 여신의 예언을 듣고도 생명보다는 이름을 택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비극적 죽음을 선택한 것도 ‘뇌물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남기기 싫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서거 10주기를 맞아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동서통합, 한반도 평화의 정신 등의 상징으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유산을 남기려는 본능은 때로 잘못된 길로 인간을 안내하기도 한다. 기원전 356년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인물은 단지 “유명해지기 위해” 에페수스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문 대통령이 유산 만들기에 조급해할수록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말라거나 진보 세력만의 미래 청사진을 보여주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해도 안 되고’ ‘해서는 안 되는’ 정책으로 자신만의 유산을 만들려 한다는 점이다. 실용이 아닌 일종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도덕적 확증편향이 이 같은 고집을 정당화하고 있다.

새로운 유산도 중요하지만 이미 검증된 과거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작업은 더 근본적인 책무다. 과거 한국의 발전을 이끌었던 개방성과 역동성·창의력·국민적 통합정신은 퇴색되고 있다. 마치 조선 시대 사대부처럼 정통성 찾기에 골몰하면서 과거 유산에 대해 허물만 들춰보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압축성장 시대를 거치며 사회 어느 곳이나 긍정적·부정적인 요소가 혼재해 있는데 도덕적 잣대로만 재단해 적폐 청산에 무게중심을 두는 듯하다. 포용의 리더십이 사라진 자리에 기업과 경제는 황폐화되고 있다. 이러다 문 대통령이 아르테미스 신전을 불태운 헤로스트라투스처럼 한국 경제를 무너뜨리는 유산을 남기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choihuk@sedaily.com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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