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서울 시내의 한 경찰서에서 열린 경미범죄심사위원회 회의실로 70대 할머니가 들어섰다. 낡은 선캡을 쓰고 백팩을 멘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는 1월 신촌의 한 가정집으로 배달된 5만8,000원 상당의 식료품을 훔친 혐의로 붙잡혔다. 10년 넘게 전단지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로 아들과 함께 생계를 꾸려간다는 할머니는 “거기가 항상 쓰레기를 버리는 자리라서 내다 버린 건 줄 알았다”며 “너무 없이 살아서 버려진 게 아까웠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몇 가지 질문과 대답이 오간 뒤 심사위원장이 “건강관리 잘하시라”며 퇴실을 지시하자 할머니는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방을 나갔다. 심사위원 5명은 만장일치로 할머니를 절도죄 입건 대신 즉결심판 청구로 감경 처분했다.
경미범죄심사제도의 심사 건수가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418건에 불과했던 서울 지역 경미범죄 심사 건수는 지난해 1,699건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의 경우 심사 대상 중 94.5%인 1,608건에 대해 처분 감경이 이뤄졌고 91건만 원처분을 유지했다. 경미범죄심사위는 심사 대상으로 정해진 피의자들이 자신의 범죄를 소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원들이 감경 여부를 결정한다. 불가피한 상황이나 안타까운 사정에서 발생한 가벼운 범죄에 대해 심사를 거쳐 최초 형사처분을 감경해준다. 심사를 통해 정상 참작을 받은 피의자는 형사 입건되지 않고 즉결심판으로 넘어가거나 훈방 조치된다.
경미범죄 심사 건수가 늘어난 것은 우선 제도 자체가 활성화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양극화 심화로 경제 형편이 어려워진 고령자와 사회 취약계층이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이 2월 발표한 ‘2018년 4·4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1분위(하위 20%)에서 가구주가 70세 이상인 가구 비중은 2017년 4·4분기 37%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42%로 늘었다. 빈곤에 시달리는 고령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노인 범죄 건수는 2011년 5만9,000여건에서 2017년 9만7,710건으로 60% 이상 늘었다. 경미범죄 심사 대상의 상당수가 60~80대 노인들이 저지른 단순절도나 점유이탈물 횡령 사건이다.
경미범죄심사제도는 경기침체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자를 구제해줘 ‘현대판 장발장’ 양산을 억제하고 범죄자 낙인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죄질이 가볍고 피해자도 처벌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형사 입건해서 범죄자로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경찰들도 경찰력의 효율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일선 경찰서의 한 생활안전과장은 “동네 좀도둑도 입건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경미한 범죄자까지 모두 입건한다면 경찰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즉결심판 청구, 통고 처분, 훈방 등 처분 감경 수단이 있음에도 경미범죄심사위를 따로 운영하는 것은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지적과 함께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서별로 제도를 시행하면서 같은 죄질의 범죄라도 어디서 심사를 받느냐에 따라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면서 “공정성·객관성 확보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허진·이희조기자 h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