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경주마




경마는 12세기 영국에서 시작했다.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영국의 기사들이 빨리 달리기로 소문난 아랍의 말을 가져와 개량에 나서면서부터다. 이들이 개량한 품종이 경주마로 제일 유명한 서러브레드다. 1622년 경마광인 제임스 1세는 런던 북쪽 100㎞ 위치에 뉴마켓이라는 경마장을 짓고 이곳에서 서러브레드가 경주하는 최초의 왕실 후원 경마대회를 열었다. 서러브레드를 비롯한 경주마는 생후 2년이 되면 본격적인 경주마로 키워진다. 3세가 되면 경주에 출전하기 시작하고 4세가 되면 운동능력이 최고조를 향해간다. 경주마가 능력을 발휘할수록 마주는 아마 이 말을 데리고 세계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켄터키 더비에 참가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켄터키 더비는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처칠다운 경마장에서 열리는 경마대회로 미국에서 월드시리즈·슈퍼볼과 함께 3대 스포츠 이벤트 가운데 하나다. 매년 5월 첫째주 토요일에 이곳에서 최고의 경주마들이 1.25마일(2,011.3m)을 달려 승부를 가린다. 사람들은 켄터키 더비를 일컬어 ‘스포츠 중 최고로 흥분되는 2분(The Most Exciting Two Minutes In Sports)’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짜릿한 경마대회가 경주마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발주대 앞에 선 경주마는 너무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물똥을 누는 경우가 흔하다. 말은 똑똑해 잠시 후 경주에서 자신이 다리를 다쳐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필사적으로 경주를 피하려 한다. 어쩔 수 없이 경주를 시작하면 앞과 뒤·옆에서 채찍을 맞으며 죽을 힘을 다해 달리는 동료 말들의 움직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사람들은 경주마가 느끼는 공포감을 줄여주기 위해 안대를 씌워 말의 시야를 가려준다. 350도에 달하는 말의 시야를 100도 정도로 좁혀주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말의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경주가 끝나면 경주마의 두려움은 현실이 된다. 매주 1~2필의 경주마가 경주 도중에 다리가 부러지는 등 사고를 당해 도살장으로 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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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근처의 한 경마장에서 5개월 새 경주마 26마리가 경주 도중 다리를 다쳐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마장에서는 지난겨울 내린 폭우로 경주로에 문제가 생겨 말들이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측했다. 사람의 2분 재미를 위해 죽을 때까지 공포 속에서 달리기만 하는 말이 불쌍하다. /한기석 논설위원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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