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일본 요코스카항에 정박한 강습상륙함 ‘와스프’에 올라 미군을 상대로 연설하는 도중에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라고 지칭했다. 한국 외교가 가장 불편해하는 ‘일본해’를 미국 대통령이 단독으로 언급한 것이다.
가뜩이나 냉랭한 한일관계의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착잡한 심정으로 미일 밀월을 바라만 보던 한국으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일본과 국제사회에서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고 있는 동해 명칭 표기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일본에 유리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동해 명칭 표기를 둘러싼 오래된 ‘굴욕외교’ 논란 재연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미군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황해·일본해·동중국해·남중국해를 위풍당당하게 순찰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해 단독 언급이 논란이 되자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정례 브리핑에서 “동해 표기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일관되고 명확하다”면서 “현재로서는 ‘동해는 병기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동해 병기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는 “확인해서 말씀드릴 사항이 있다면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동해 표기 문제는 한국 외교에 있어 굉장히 힘든 지점 중 하나다. 지난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국제사회에서 일본해 단독 표기가 문제시될 때마다 ‘굴욕외교’라는 비판이 따라붙었다.
일례로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한국·중국·일본·러시아 등 동북아 지역 국가들이 참여하는 환경회의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데 우리 정부가 동의하자 당시 민주당은 박지원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국민감정과 역사를 무시한 또 하나의 굴욕외교”라면서 즉각적인 시정을 촉구했다.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는 공식 의견을 국제수로기구(IHO)에 제출하는 일이 벌어졌고 역시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김진표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권의 무능외교”라며 “일본이나 미국에 제대로 된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아 뒤통수를 맞게 된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이고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역시 ‘굴욕외교’ 논란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특별한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일본이 이를 국제사회 여론전에 이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다시 한 번 미일동맹을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미일동맹은 전례 없이 강하다”며 미국이 대중(對中) 견제를 위해 추진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에 동참 의사를 내보였다. 그는 이어 승선한 호위함이 향후 전투기를 탑재하도록 보수될 것이라며 “지역 공공재로서 미일동맹 강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F-35 전투기 105대 구매계획을 언급하며 “지역과 더 넓은 영역을 다양하고 복잡한 위협으로부터 방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요코스카의 미군 해군기지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강습상륙함 ‘와스프’에 올라 “우리는 힘에 의한 평화가 필요하다”며 “미일동맹은 어느 때보다 탄탄하다”고 강조했다. /정영현·박민주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