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연극 '887' '살아있는 기억'으로서 연극 예술의 가치 보여줘

세계적 연출가 르파주 1인극 '887' LG아트센터에서

자전적 이야기 바탕…1960년대 퀘백 정치,사회상

개인의 기억, 역사로서의 기억 등 되돌아 봐

연극 ‘887’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연극 ‘887’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



세계적인 연출가 로베르 르파주가 연극 ‘안데르센 프로젝트’ 이후 12년 만에 내한해 1인극 ‘887’을 선보인다.

‘태양의 서커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등을 연출한 르파주는 전통적인 형식에 혁신적 기술과 창의적 스토리텔링을 도입해 현대 연극의 경계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상했고 유럽연극상, 글렌 굴드상 등을 휩쓸었다.

연극 ‘887’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연극 ‘887’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


다음 달 2일까지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연극 ‘887’에 앞서 서울 중구 주한캐나다 대사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그는 “연극이란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기억을 담아내는 예술”이라며 “전체주의 체제가 문화 말살을 위해 가장 먼저 책을 불태운 뒤 그 다음으로 노래꾼과 이야기꾼, 배우를 죽였다”고 설명했다.


‘887’은 르파주의 자전적 이야기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연출가가 아니라 홀로 무대를 채우고, 관객을 압도하는 배우로 변신한다. 그는 캐나다 퀘벡에서 열리는 ‘시의 밤’ 40주년 기념식에 초청받아 3쪽 분량의 시를 낭송해야 한다. 잘 외워지지 않아 당혹스러워하다가 고대 그리스 기억법인 ‘기억의 궁전’을 활용하기로 한다. 익숙한 장소에 외워야 할 내용을 재조합하는 방식이다. 르파주는 기억의 궁전을 1960년대 자신이 어렸을 때 살았던 아파트 건물 ‘퀘벡 시티 머레이가 887번지’로 삼는다. 자연스럽게 가족이나 개성 넘치던 이웃들과의 추억들이 떠오르고 당시 퀘벡의 정치·사회적인 변화도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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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파주는 “이번 연극을 통해 소문자 ‘h’로 시작되는 개인적인 역사(history)와 대문자 ‘H’로 시작하는 캐나다 역사(History)를 짚어보고 싶었다”면서 “작품 배경인 1960년대 퀘벡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계급 갈등이 끊이지 않는 등 다양한 변혁을 겪었다. 우리가 과거 어떤 잘못을 했는지 끊임없이 되살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예술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넷플릭스 시대’에 연극이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넷플릭스는 집에 앉아 다양할 콘텐츠를 볼 수 있지만 연극은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고 자동차를 끌고 극장에 가야 한다”며 “연극이 살아남으려면 삶을 송두리째 바꿀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극 ‘887’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연극 ‘887’의 한 장면. /사진제공=LG아트센터


르파주는 ‘887’에서도 특유의 장점인 무대 기술 능력을 발휘한다. 그는 1994년 연극·영상·디자인·음악·오페라·인형극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작업할 창작집단 ‘엑스 마키나(기계장치)’를 설립했다. 세트는 무대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현재의 집, 어린 시절 아파트 등 여러 공간으로 변신한다. 다양한 미니어처 모형들, 낡은 상자 속에 묵혀 있던 옛날 사진과 신문의 이미지들은 마치 가까운 이의 추억을 직접 들여다보는 것 같은 생동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사진제공=LG아트센터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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