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권구찬 선임기자의 관점]성역이 된 비과세·감면…"줬다 왜 뺏나" 아우성에 정권마다 두 손

<'숨은 보조금' 조세감면>

역대 정부마다 '축소' 나섰지만

정권 후반갈수록 되레 감면 늘어나

조세 특례의 영구·기득권화 '심각'

올해 47조원, 법정감면 한도 웃돌아

넓은 세원·낮은 세율 원칙 어긋나고

세입기반 잠식되면 세율인상 부메랑

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모습.  국회는 세법 심의에서 상호금융 준조합원 예탁금에 대한 비과세를 2년 연장했다. 1995년 일몰도입 이후 9번째 연장이다.  /연합뉴스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모습. 국회는 세법 심의에서 상호금융 준조합원 예탁금에 대한 비과세를 2년 연장했다. 1995년 일몰도입 이후 9번째 연장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3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회의실. 2019년도 세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일곱 번째 회의에서 농협 등 상호금융 준조합원에 대한 비과세를 줄이는 내용의 정부 측 법안이 테이블에 올랐다. 다음은 국회 속기록.

-김병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1976년부터 제도가 시행돼 세제 지원을 오래 해왔다. 조합원은 모르겠으나 준조합원에 대해서는 과세 전환이 바람직하다.


-김광림 의원=76년부터 하던 것을 왜 2018년에 와서 스톱하려고 하나.

-권성동 의원=이것 폐기해 봐야 세수에 큰 도움이 안 된다.

-유승희 의원=박영선 의원도 김정우 의원 안(3년 연장)에 동의하는 것으로 부탁하고 가더라.

-서형수 의원=준조합원 혜택을 없애려면 준조합원이 조합원으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감안해 제도 개선을….

-김 세제실장=혜택을 없애는 게 아니라 줄이겠다는 것이다.

-서 의원=글쎄, 그러니까 형평을 따져서 판단해달라.

-추경호 의원=절충해서 2년 정도 일단 검토하면 좋겠다.


-고형권 기재부 1차관=다수 의원님들이…. 추경호 의원님 안을 따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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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 소위원장=그러면 2년 연장으로 정리하겠다.

정부가 제출한 조세특례법 제89조 3항 개정안은 그렇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상호금융 관련 비과세의 일몰 조항이 도입된 지난 1995년 이후 아홉 차례 조세특례가 연장되는 순간이었다. 유권자 눈치를 보는 데는 여당(박영선·유승희·서형수)과 야당(김광림·권성동·추경호)이 따로 없었다. 농협의 준조합원만도 1,700만 명에 이른다. ‘표의 노예’라는 국회의원의 씁쓸한 단면이다.

이 조세특례는 1976년 비과세 한도 100만 원으로 출발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한도가 높아지더니 1987년부터 준조합원까지 수혜 폭이 확대됐다. 지금도 1만 원만 내면 준조합원 자격으로 예탁금 3,000만 원까지 이자소득세를 한 푼도 물지 않는다. 문제는 이 제도가 농촌과 무관한 도시인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농협 예탁금의 88%는 준조합원이 낸 돈이다. 조세 당국이 준조합원에 한해 과세로 전환하려는 연유는 여기에 있다. 조세 형평성에 어긋날 뿐 아니라 세입 기반 확충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준조합원 과세전환이 정치권의 제동으로 불발된 것은 비과세· 감면의 원상복귀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흔히 ‘보이지 않는 보조금’ ‘숨은 보조금’으로 부르는 비과세 감면의 법정용어는 조세지출. 조세수입 감소가 곧 재정지출이라서다. 이 제도는 정부의 직접적 재정지출에 비해 시장 개입의 강도가 낮고 조세지원을 통해 경제 전반에 긍정적 외부 효과를 낳는다.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순기능도 있다. 전체 조세지출의 65% 안팎이 취약층이나 중소기업에 쏠리는 연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조세감면이 갈수록 영구· 기득권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특례를 신설하면 좀처럼 폐기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지금은 명칭이 달라지고 지원 요건도 까다로워진 임시 투자세액공제도 그렇다. 원래 경기 침체기에 기업 투자를 촉진할 목적으로 1982년 도입됐으나 경기가 좋든 말든 무려 18차례나 일몰이 연장돼 ‘상시’ 투자세액공제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조세지원의 실효성이 없는데 존치되는 특례도 수두룩하다. 지난해 89개 일몰 대상 가운데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조세 감면액이 10억 원도 채 안 되는 특례가 38개에 이른다. 이 중 2년 연속 제로인 항목도 23개나 된다. 세제실장 출신의 한 전직관료는 “비과세 감면 조치는 조세 형평성에 어긋나 한시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일몰 종료를 앞두고 ‘줬다가 왜 빼앗느냐’는 시비가 붙거나 증세 논란이 불거지면 정부로서는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세지출이 경제논리보다 정무적 판단으로 결정된다는 의미다.

비과세 감면제도의 정비는 역대 정부마다 조세정책의 금과옥조였다. ‘넓은 세율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원칙은 진보·보수정부를 막론하고 공유하는 가치였다. 하지만 조세감면은 이해 관계자들의 성역이 된 탓에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 달성을 위해 일몰 폐지 원칙을 내세웠지만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비과세 감면을 축소해 매년 최대 3조8,000억 원의 세입기반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했으나 2014년 3조 원을 확충한 후 2년 연속 1,000억 원밖에 늘리지 못했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7월 김동연(가운데) 경제부총리가 정부세종청사에서 2019년도 세법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일몰도래한 89개 비과세 감면 조항 가운데 고작 9개 폐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연합뉴스지난해 7월 김동연(가운데) 경제부총리가 정부세종청사에서 2019년도 세법개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일몰도래한 89개 비과세 감면 조항 가운데 고작 9개 폐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연합뉴스


반면 비과세 감면 요구는 빗발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운 세제 지원을 요청하는 수요는 해마다 300여 건. 감세 요구가 모두 수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역대 정부마다 비과세 감면 폐지보다 신설이 더 많았다. 조세지출예산서가 공개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폐지는 59건에 그쳤지만 신설은 80건에 달했다. 국세 감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연유다. 2000년 13조 원 수준의 감면액은 2009년 30조 원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 42조 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국세수입 증가율보다 높다.



근로·자녀장려금은 문재인 정부 들어 조세지출의 복병으로 부상했다. 2014년 1조 원이 채 안 돼 230여 개 조세지출 항목 가운데 14위에 그쳤지만 올해는 5조 원에 육박하면서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 이 바람에 올해 국세 감면액은 47조 원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법정 감면 한도(13.5%)를 넘어설 것으로 정부는 추정한다. 재정전문가들은 근로 장려금 확대가 추세적으로 불가피한 만큼 다른 조세지출을 엄격히 제한해야 재정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정부가 ‘포용국가’ 달성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5년간 332조 원을 투입한다는 ‘제2차 사회보장 기본계획’을 내놓았지만 정작 재원조달 계획은 오리무중이다. 김학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세원을 넓히지 않으면 결국 세율 인상을 초래해 경제적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오는 7월 내년에 적용할 세법 개정안을 내놓는다. 올해로 시한이 끝나는 비과세·감면 조항만도 30개(감면액 3조 원)에 이른다. 이중 얼마나 칼질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년 총선 시계부터 바라볼지도 모를 일이다. / chans@sedaily.com

권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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