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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Market] 자원 아닌 기술로 에너지 자립…오래된 미래 '수소'에 달렸다

이병권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

이병권 KIST 원장이병권 KIST 원장



최초의 국책연구기관 KIST는 ‘오래된 미래’로 곧잘 회자된다. 노르베리 호지의 책 제목으로 더 알려진 이 말은 오랜기간 함께 해왔던 것들에서 미래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읽혀져 이 표현을 좋아한다. 아마도 우주에서 제일 처음 만들어진 원소인 수소만큼 인류에게 ‘오래된 미래’라 불리기 적합한 것도 없을 듯 같다. 반도체 착시가 걷히면서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가 한층 커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닫혀가는 성장판을 다시 열기 위해서는 서둘러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고 다시 불을 지펴야 한다. 수소경제 실현에 공을 들이는 정부의 생각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정부는 수소경제를 에너지원을 화석연료에서 수소로 바꾸는 산업구조의 변화로 설명한다. 하지만 에너지원의 변화는 이보다도 차원이 다른 인류사적 변화이다.

미국 등 서구 각국은 초기 산업사회 당시 램프의 등불에 사용되는 향유고래의 기름을 얻기 위해 전 세계 바다에서 고래잡이를 진행했다. 하지만 1859년 석유 굴착이 시작되면서 향유고래의 기름보다 우수한 등유의 정제·생산이 본격화된다. 1885년 독일의 다임러가 휘발유 내연기관을 완성하며 휘발유가 수요가 가장 큰 원유 정제품으로 등장한다. 그 이후 세계는 석유에 중독된 채 1,2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것에 최적화된 기술과 산업을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약속하지 못하는 화석연료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출현을 촉발시킨다.


사실 풍력·태양광 등 자연이 만드는 불규칙한 에너지의 저장 필요성 때문에 주목받기 시작한 수소는 아주 오래된 기술이다. ‘공해 없는 수소에너지 개발박차, 수소경제시대가 멀지 않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1970년대 후반 국내 언론에 소개됐다. 1990년대 이후 각 연구기관 등에서 전망하는 유망기술에 수소연료전지는 단골로 포함되었고, 2005년에 정부는 2040년 자동차의 54%, 발전설비의 22%가 연료전지로 대체될 것이라는 희망섞인 청사진을 내놓았다. 하지만 수소가 우리 산업과 실생활에 다가오는데 그 만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최근 수소경제에 대한 논쟁이 전문가 그룹을 넘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수소생산·유통의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은 여건에서 자칫 국가적 차원의 대대적 투자가 또 다른 갈라파고스 코리아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분명 경청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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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육성하고자 하는 미래산업은 기존 산업이 성장해왔던 방식과 차이가 크다. 허허벌판에 선진국에서 얻은 설계도대로 밤낮없이 건설에 매진했던 시기에는 필요하지 않았던 전략과 선택에 대한 면밀한 고민이 필요하다. 복잡·다양하게 얽힌 기존 산업과 기술, 경쟁 사이에서 조화롭게 전진해 나가야 한다. 특히 수소경제 실현의 성패는 사용자의 공감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전반의 다양한 의견은 소중한 집단지성으로 작용할 것이다. 사용자와 시장의 수용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부 비전은 과거 희망 섞인 청사진을 답습할 뿐이다.

얼마 전 미국 에너지부의 연례 수소연료전지 회의에 다녀왔다. 수소경제 실현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현실적 기술수준과 경제성 실현방향 등을 객관적으로 가늠해 보고 싶었다.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는 기술들을 보면서도 우리가 야심차게 계획하는 수소사회 실현에 넘어야 할 허들이 적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귀국길에 한 가지 확신이 굳어졌다. 에너지는 더 이상 ‘자원이 아닌 기술’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의존도가 95% 넘는 우리의 에너지 구조에서 자원으로서의 에너지는 어쩌면 영원히 극복 불가능의 대상일 것이다. 하지만 기술로서의 에너지는 시기의 문제일 뿐 분명히 극복 가능한 대상이다. 우주에서 처음 만들어진 원소인 수소가 연료로 처음 사용된 것은 인류의 우주로 향한 도전에서였다. 우리가 추구하는 수소사회 실현 역시 오래된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 가는 도전의 여정일 것이다.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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