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회도 합의 못한 사안 의제 다루고… 노사는 양보·타협 없이 일방통행만

■시스템 고장난 대한민국-헛바퀴 도는 '대화의 場'

대통령 직속 경사노위 출범 6개월

노사 마찰만 빚다가 의결 안건 '0'

각자 민원해결 수단으로만 바라봐

"스몰딜부터 협의해 신뢰 쌓아야"

0315A05 경사노위에서처리되지못한현안



‘사회적 대화’ 시스템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사회적 대화를 위해 지난해 11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대통령 직속 기구로 의욕적으로 출범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마찰만 빚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대화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대통령이나 정부가 적극 나서 양보와 타협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노사의 공감대가 있는 ‘스몰딜’부터 충분히 협의하며 차곡차곡 성과를 쌓아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2일 정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경사노위 출범 이래 현재 본위원회에서 최종 의결된 안건은 6개월 동안 전혀 없다. ‘1호 안건’이었던 탄력근로제 개편안을 비롯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위원회 활동시한 연장 등이 처리되지 못했다.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방안도 노사정 합의문은 냈지만 본위원회에서 확정하지 못했다.


이처럼 사회적 대화가 침몰하고 있는 것은 주체인 노사가 대화의 경험이 없고 신뢰도 없는 상황이 원인이라고 노사 안팎의 전문가들은 말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가 정말 사회적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 기대하고 정부도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는지에 대해 부정적”이라며 “노사관계에는 타협의 DNA가 없어 정치적 압박 등에 밀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등 떠밀려 타협한 경험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도 “노사 모두 사회적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며 “서로 친기업·친노동 정부가 들어섰을 때 정부의 뒤에서 자기의 요구를 관철하는 도구로 썼다”고 지적했다. 노사 당사자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가 안 되는 이유로 “사회적 대화 경험이 다들 일천하고 과거 노사정의 신뢰가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본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 중 하나인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노사정의 신뢰가 성숙하지 못한 맥락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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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의 위상이 전신인 노사정위원회 시절처럼 합의 기구인지 ‘사회적 협의 기구’인지 모호하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노 소장은 “당초 경사노위를 특정 사안에 대해 합의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을 두고 논의한 다음 그 내용을 정부나 국회로 보내는 사회적 협의 기구로 정했지만 정작 정부가 요구하는 입법안을 만들기 위한 기구가 된 게 사회적 대화를 향한 비판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사노위가 정치적 폭발력이 큰 사안들을 사회적 대화의 의제로 다뤄야 했던 현실이 문제였다는 분석도 있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는 “경사노위가 공전하는 원인이 된 노동법 개정 사안은 국회에서조차 합의에 실패했는데 노사정 합의가 가능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사회적 대화의 무용론까지 언급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사노위가 정식 출범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성패를 따지기는 너무 이르다는 얘기다.

사회적 대화를 되살리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도 노사 뒤에 숨지 말고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사회적 대화의 토대가 약한 곳에서는 정부가 하향식 형태로라도 노사가 양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필요하면 대통령이 직접 양대 노총 위원장, 재계 단체장도 불러 머리를 맞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네덜란드 등 노사정 대타협의 모범 국가들도 마지막에는 국가수반이 직접 나섰다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노사 간 신뢰 회복도 필수적이다. 사회적 대화를 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돌아보고 노사가 각각 얻어가야 할 것과 이를 위해 양보해야 할 것을 냉정하게 판단한 다음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노사가 상대적으로 작은 양보를 통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는 스몰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최대치를 위원회의 의견으로 만들어 사회적 합의의 토대를 착실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장기적 의제 위주로 이끌어가며 시간을 두고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최 객원교수는 “임금 격차, 노동시장 이중구조, 베이비붐 세대 은퇴 후 대응 방향, 디지털 시대 일자리의 미래 등 경사노위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은 얼마든지 많다”며 이같이 조언했다. 아울러 경사노위에 노사 계층별 위원들을 참여시킨 취지에 맞게 계층별 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목소리를 담아내는 동시에 청년·여성·비정규직 노동자위원 3명도 복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세종=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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