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業 모르는' 지자체에..울고싶은 철강사

부산시, 中기업 투자 결국 승인

국내 스테인리스 기업 고사 위기

수출땐 '中제품' 무역분쟁 빌미도

충남도 "밸브 열면 오염물질 배출"

현대제철 2고로 열흘간 중단 지시

"정비 필수과정인데..수천억 손실"

0516A13 일괄제철소 16판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파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철강업계가 이번엔 국내 ‘지방자치단체 리스크’에 휘청이고 있다. 부산시가 중국의 거대 스테인리스 업체인 중국 칭산강철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받아들이기로 한 데 이어 충청남도는 현대제철에 생산공정 핵심시설인 고로(용광로)의 가동중단을 지시했다. ‘내우외환’에 비상이 걸린 철강사들은 “지자체들이 철강업 특성을 보지 않은 채 근시안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4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부산시는 중국 칭산강철의 부산 투자를 결국 승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가 앞장서 안방을 내주고 있다”는 철강업계 반발로 잠시 주춤하는 듯 했지만 결국 오거돈 부산시장이 강행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투자는 칭산강철이 국내 1위 스테인리스 강관 제조업체인 길산파이프가 50대50으로 합작해 부산 미음공단에 연산 60만톤 규모의 스테인리스 냉연강판 생산공장을 짓는 내용이다. 저렴한 중국·동남아산 스테인리스 열연을 들여와 냉연으로 가공해 국내에 판매하거나 수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투자 규모는 1억2,000만 달러(약 1,400억원)이다. 부산시와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투자로 약 500명의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고용창출 규모보다 총 고용 5,000명에 달하는 국내 동종업계 손실이 더욱 클 것이라는 게 국내 스테인리스 업계의 주장이다. 칭산강철은 전 세계 스테인리스 생산량 약 3,000만톤 중 1,000만톤을 담당하는 글로벌 메이저 업체다. 칭산강철이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으로부터 값싼 소재를 들여와 냉연을 만들어 저가공세를 펼칠 경우 이미 포화상태에 처한 국내 업계는 고사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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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한국이 중국산 철강제품의 우회수출처로 지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상대국으로부터 ‘한국산 제품은 결국 중국제품’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중국산 소재를 사용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청산강철 냉연제품이 한국산으로 둔갑해 수출되면 반덤핑관세 등 무역 제재 확대의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충남도 또한 지난 3일 현대제철에 당진제철소 2고로 가동을 10일 간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고로는 철광석을 유연탄 등을 넣고 녹여 쇳물을 만드는 작업으로, 일관제철 공정의 ‘꽃’으로 불리는 철강업의 핵심이다. 철강업체는 약 2~3달에 한 번 약 이틀 간 쇳물 생산을 중단하는 ‘휴풍(休風)’을 하는데, 이 때 고로 내 압력 조절을 통해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비상밸브’인 블리더를 1시간 가량 일시 개방한다. 충남도는 이 1시간 동안 오염물질이 불법 배출된다며 10일 가동중단 조치를 내린 것인데, 업계에선 이틀을 쇳물이 굳지 않게 고로 가동을 중단할 수 있는 최장 기간으로 판단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고로 정비를 위해 블리더를 개방하는 건 업의 특성상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며 “이를 열지 말라거나 열었기 때문에 고로 가동을 중단하라는 건 철강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은 이날 “현재로선 전 세계를 통틀어 블리더 개방 없이 고로를 정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포항·광양제철소, 나아가 유럽·일본 등의 선진 철강사들도 블리더를 열고 고로 정비를 한다. 경북도와 전남도도 고로 가동중단 명령을 내릴지 고민 중이어서 이번 조치가 확산하면 국내 철강업계는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업계는 24시간 상시가동해야 하는 연속 공정인 고로를 10일 중단하면 수천억원 대 매출 피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고로는 1,500도 이상의 고온을 연중 유지해야 하지만 가동이 중단돼 식어버리면 다시 온도를 올리는 데 두 달 이상이 걸린다. 온도·압력차이로 인한 부생가스 폭발 등 안전사고 위험도 오히려 높아진다. 익명을 요구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지자체들이 산업의 특성을 잘 모른 채 무리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며 “글로벌 통상 환경 악화에 이어 국내에서까지 발등의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hspark@sedaily.com

박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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