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이념에 따라 갈라진 한국 사회에 대한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좌파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을 공식 언급하면서 정치권에 다시 이념 논쟁에 불이 붙었다.
이날 추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독립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노력이 함께 녹아 있다”며 “보수든 진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고 강조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추념식에 참석한 가운데 문 대통령이 보수 진영을 다독이고 나아가 국회 공전 상태를 하루빨리 해소하자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문 대통령은 이날 추념식에서 각지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해 월남전 한국 사령관 채명신 장군에 이어 한국전쟁에서 숨진 수많은 미국 군인 등까지 고루 언급했다. 특히 청해부대 최영함에 탑승해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파병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중 숨진 최종근 하사의 유족들을 향해서는 “위로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란다”며 따뜻한 애도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자는 문 대통령의 이날 추념사는 약산 김원봉이 공식 언급되면서 다시 정쟁의 불씨를 지폈다. 영화 ‘암살’의 흥행 이후 대중에 알려진 김원봉은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한 뒤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에게 숙청된 인물이다. 그가 대표적인 독립투사임은 분명하지만 북한 정권에 가담했던 사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그에 대한 서훈 논란이 이어져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좌우를 넘어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세력이 결합했고 이들의 힘을 모아 일본과 맞섰으며, 궁극적으로 국군 창설과 한미 동맹의 기원이 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광복군에 무정부주의 세력인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며 “그 힘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김원봉을 공식 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에 김원봉의 활약을 다룬 영화 ‘암살’을 본 뒤 “체제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라는 글을 쓴 바 있다.
이에 대해 야당은 “귀를 의심하게 하는 추념사였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독립과 건국이라는 역사의 갈래를 분별하지 않고 또한 6·25전쟁이라는 명백한 북의 침략전쟁을 부각시키지 않다 보니 1948년 월북해 조국해방전쟁, 즉 6·25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며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평가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청와대는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오후 춘추관을 찾아 “대통령의 말씀은 이념 문제나 정파를 뛰어넘자는 취지”라며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라는 것이 아니라 통합된 광복군이 국군과 한미동맹의 기원이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날 대통령 말씀과 김원봉 서훈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윤홍우·방진혁기자 seoulbir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