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단언컨대 국회에서 “민생 안정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의원은 없다. 지난 9개월간 여당과 야당을 출입하며 만난 모든 의원은 이런저런 얘기를 편하게 주고받는 자리에서조차도 한결같이 민생 안정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마주한 더불어민주당의 한 3선 의원은 “적어도 한 나라의 의원이라면 국가 미래 발전과 민생 안정에 힘을 보태지는 못할망정 훼방을 놓아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힘줘 말했다. 다른 곳에서 만난 자유한국당의 3선 의원은 “지역구 경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좋지 않다”며 “정치라는 게 결국은 국민들 잘 먹고 잘살게 하는 것인데”라고 역설했다. 결은 다소 다르지만 ‘국회가 민생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발언의 취지만큼은 맥락을 같이한다.
공식 석상에서 흘러나오는 여야의 메시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일 “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은 20대 국회에서만 17번째”라며 “한국당은 하루빨리 등원해 산적한 민생 현안과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문제를 꼭 다뤄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국회가 문을 열지 못하는 것은 여당의 불법적 패스트트랙 지정 때문”이라며 “좌파정부 폭정 2년 만에 경제가 폭망했다. 민생과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있다”고 응수했다. 접점이 과연 있을까 싶은 뼈 있는 말들 속에도 유심히 보면 ‘민생’이라는 공통분모는 있다.
여야와 장소를 막론하고 국회가 이처럼 입으로는 민생 안정을 부르짖고 있지만 올해 4월6일 이후 이달 6일까지 두 달간 처리한 법안은 전무하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각각 생각하는 민생 법안의 범주가 다르지만 통과시킨 법안이 아예 하나도 없으니 굳이 민생과 비민생 법안을 따질 필요도 없다. 말과 행동이 지독하게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국민 시각에서 보면 국회는 거짓말쟁이의 대명사인 ‘피노키오’인 셈이다. 심지어 여야는 지난해 연내 처리하기로 합의했던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법안 등도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특히 오는 7월부터는 근로시간 단축 업종이 21개 더 늘어나 서두르지 않을 경우 제2·제3의 ‘버스 파업 사태’가 발생해 민생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말이다. 이외에 4차 산업혁명 관련 법안 등도 미래의 민생 안정을 위해 처리를 미뤄서는 안 된다.
국회가 피노키오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우선 여야가 논의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물론 생각과 입장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럴수록 실종된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내년 총선에서 여야가 그토록 잡고 싶어하는 중도층의 표심이 민생 안정을 위해 통 큰 양보를 하는 쪽으로 향할지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한국당의 또 다른 이름은 민생포기당” “민주당이 열고자 하는 국회는 총선국회”라는 식의 말다툼은 피노키오 원작의 비극적 결말만 떠올리게 할 뿐이다.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