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니엘호텔 프러포즈 패키지는 결혼을 위한 로망으로 꼽히는 코스다. 객실에 마련된 케이크, 꽃다발, 샴페인과 디너 풀코스 등을 포함해 150만원에 이르지만 지난해 전년 대비 예약건수가 2배로 늘었다. 흥미로운 점은 부유층 자녀가 아닌데도 몇달간 돈을 모아 이벤트를 준비하는 고객이 많다는 것이다. 집 사기를 포기하고 고급시계와 고급 외제 승용차를 갖기 위해 몇년간 적금을 붓는 20~30대도 늘고 있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M세대) 사이에 유행하는 ‘나심비(나의 마음을 위한 소비)’의 단적인 사례다. 이제 밀레니얼 세대는 ‘가성비’ ‘가심비’를 넘어 가격과 상관없이 ‘나’만의 만족을 위한 소비에 지갑을 열고 있다.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철없는 행동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소비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 유통업권을 변화시키고 있는 배송·배달 모두 이들로 인한 변화상이다. 생활밀착형 저가제품을 주로 팔던 편의점조차 배송을 시작할 만큼 이들의 힘은 강력하다. 제품비 1만원에 배송료가 3,000원으로 최대 배송비가 30%에 달하지만 이용한 이들 셋 중 하나는 다시 이용할 만큼 인기다.
가정간편식(HMR) 시장, 집에서 할 수 있는 제품·서비스를 아우르는 ‘홈코노미’, 설계단계에서 세입자의 의사를 반영해 짓는 ‘퍼즐주택’ 등도 밀레니얼 세대가 만들어낸 풍속도다. 이들의 소비가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삼정KPMG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국내 인구의 44%가 밀레니얼 세대로 기업들이 향후 소비시장을 주도할 새로운 세대의 소비 특성을 파악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장훈 삼정KPMG 유통·소비재산업 부대표는 “‘나’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소비자의 고객 데이터 분석력을 높여 개인별로 맞춤화된 상품을 제공하는 ‘딥리테일(deep retail)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잡한 듯 보이지만 이들의 소비 패턴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나’ ‘경험’ ‘공유’다. 지금 이 순간에 나만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소유는 어느 정도 포기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내일보다 오늘에 더 집중하는 20~30대 ‘온리싱글데이족’이 급증하면서 일각에서는 밀레니얼을 신인류라고 정의한다. 이들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개인적 가치와 기업윤리 등을 중시하는 소비 패턴을 보이면서 유통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이들의 소비가 희망 없는 현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인 1980~2002년 출생자들을 지칭하는 이들에게는 ‘스펙이 단군 이래 최고’ ‘명품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큰손’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단군 이래 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 라는 다소 서글픈 꼬리표도 붙는다. 취업난과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으로 ‘7포(연애·결혼·출산·내 집·인간관계·꿈·희망을 포기)’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미래를 꿈꾸기가 어려워지자 현재의 즐거움에 ‘올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세정 상명대 교수는 “20~30대가 희망을 찾지 못하면서 버닝소비에 보다 몰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버닝소비는 희열감과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 같은 효과를 주지만 내일의 불투명함과 현실의 어려움이 결합한 복합적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버닝소비는 장기적으로는 미래의 구매력을 떨어뜨리고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