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미국 항공엔진 부품 업체를 약 3억달러(약 3,500억원)에 인수한다. 삼성과의 빅딜 이후 잠잠했던 한화의 인수합병(M&A) 본능이 되살아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와 있는 상황에서 M&A 승부사로 꼽히는 김승연 회장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한화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고 있다.
10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항공엔진 부품 전문업체 이닥(EDAC)의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국내 유일의 항공엔진 부품 제조기업인 한화에어로가 글로벌 항공엔진 시장의 진정한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평가다. 이닥은 글로벌 항공엔진 업체인 미국 GE와 프랫앤드휘트니(P&W)에 주요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다. 지난해 매출은 약 1억5,000만달러, 직원 수는 약 590명 정도다. 한화에어로 측은 “항공기 엔진 글로벌 파트너라는 비전 달성을 위해 사업 확대를 위한 M&A 기회를 모색해왔다”며 “지난 4월 이닥 인수를 위한 예비입찰에 참여해 지난달 정밀실사와 최종입찰을 거쳐 인수계약을 맺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화에어로는 이닥 인수를 위해 미국에 있는 인수목적 자회사인 AMC(Accelerate Merger Corp.)에 올해 말까지 약 3,5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할 계획이다. 그 뒤 이닥이 AMC를 흡수합병하면서 AMC 주식을 모두 이닥 주식으로 전환하고 한화에어로가 이닥 주식 100%를 취득하는 구조다.
이닥의 주요 제품은 첨단 항공기 엔진에 들어가는 일체식 로터 블레이드(IBR)와 케이스 등이다. IBR은 엔진 중심에 있는 긴 축인 로터에 블레이드를 붙여 일체형으로 만든 항공엔진의 핵심 부품이다. 한화에어로 또한 세계 3대 항공엔진 제조사(GE·P&W·롤스로이스) 모두에 납품하고 있지만 부가가치가 큰 회전체보다는 고정체 부품 위주라는 게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핵심 회전체인 IBR을 생산하는 이닥을 인수하면서 이 같은 고민을 한 번에 해소하게 됐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한화에어로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제품의 고난도 가공기술 역량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기대했다.
이닥 인수는 글로벌 항공엔진 산업의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할 수 있는 한화에어로의 승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닥 본사가 있는 미국 코네티컷주는 P&W 본사가 위치한 항공엔진의 중심지다. GE 본사가 있는 매사추세츠주와도 인접해 있다. 한화에어로는 이닥을 통해 글로벌 산업 본거지에 플랫폼을 마련하고 영업력, 수주,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를 꾀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는 최근 진입장벽이 높은 항공기 엔진 제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P&W와는 제품개발 단계부터 함께하는 수익·위험 공유 프로그램(RSP·Risk and Revenue Program) 파트너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항공기 엔진 개발에는 5조~10조원의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글로벌 엔진 제작사들도 이를 홀로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술력과 경쟁력이 입증된 회사들을 개발 단계부터 참여시켜 투자를 받는다. P&W의 RSP 파트너는 전 세계 8개사에 불과하다. 이번에 산업의 중심 업체인 이닥 인수로 항공 사업 육성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항공엔진 부품 사업은 한화가 2015년 삼성으로부터 회사를 인수한 뒤 그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분야다. 오는 2022년까지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4조원을 투자하기로 했고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 베트남 하노이에 지은 한화에어로 부품 신공장 준공식에 직접 참여해 힘을 실었다. 글로벌 항공기 엔진 부품 시장은 연평균 6% 성장을 지속해 2025년 542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신현우 한화에어로 사장은 이날 인수 발표 후 낸 자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참여설을 다시 한번 부인했다. 그는 “항간의 인수설에 대해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검토한 적도 없고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항공엔진과 항공기계 등 첨단기술 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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