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탐사S] 'FATCA 시한폭탄' 된 불법 복수국적자

국적상실 신고 안한 시민권자

내국인으로 위장, 계좌 등 개설

금융사는 이중국적 확인 힘들어

美, 협정 위반으로 제재 할수도

1215A01 한미불법복수국적자



미국 시민권을 얻고도 한국 법무부에 국적상실 신고를 하지 않은 재미동포들이 지난 13년간 무려 8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이들이 ‘한미 금융정보 자동교환협정(FATCA)’ 위반의 시한폭탄으로 등장했다. 협정위반이 현실화할 경우 이들의 계좌정보를 우리 국세청을 통해 미 정부에 통보해야 하는 우리 금융기관들에도 화가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기사 4·5면

한국 정부는 후천적 복수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만큼 미 시민권 취득자들은 한국 법무부에 국적상실 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교포들이 이를 신고하지 않은 채 한국 주민등록번호와 주민등록증 등을 불법 사용할 수 있어 부작용이 우려된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지난 2016년부터 FATCA를 통해 미국 납세자(영주권·시민권자)의 한국 내 금융자산 정보를 취합한 뒤 미 정부에 통보해왔다. 이 과정에서 국적상실 신고를 하지 않은 미 시민권자들의 금융정보 신고 누락이 예상된다. 이 경우 관련 국내 금융기관들 역시 신고의무 위반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다.


11일 본지 탐사기획팀이 미 국무부와 한국 법무부 등의 미국 귀화자, 한국 국적 상실자의 수치를 집계해 확인한 결과 2005년 이후 지난해까지 미국에 귀화한 뒤 한국 법무부에 국적상실 신고를 하지 않은 재미동포가 8만2,754명에 달했다. 그동안 서류상 불법 복수국적자 처리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수치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해외에서 시민권을 획득한 만큼 한국 국적 상실자가 되지만 자진 신고하지 않을 경우 한국 신분증과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얼마든지 내국인으로 위장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서류상 불법 복수국적자가 한미 간에 체결된 FATCA의 블랙홀이라는 점이다. 한국 금융기관은 신규 계좌 개설 시 주민증 등 한국 신분증을 제시한 고객에게 FATCA에서 요구하는 ‘본인확인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 금융기관에서 계좌 등을 신규 개설할 경우 해외 국가 납세자 여부를 확인한 뒤 해외 국가의 납세자 번호와 해외 주소 등을 담은 본인확인서를 받아야 하지만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현재 한미 금융정보 교환협정 이행규정 67조 1항에는 “금융기관에서 신규 개인 계좌가 (FATCA) 보고 대상인지 확인하기 위해 계좌 개설 시점에 보유자의 본인확인서와 증빙자료를 수취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앤드루 박(법무법인 동률) 미국회계사는 “미국 시민권 획득 후 한국 국적을 상실하지 않은 채 한국에서 내국인 자격으로 금융거래를 하다 일이 복잡해져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면서 “한국 금융기관들이 이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한국 국세청도 이들의 정보를 누락하는 일이 누적될 경우 한국 금융기관이 미국 정부로부터 FATCA 미이행 금융기관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 불법 복수국적자들은 FATCA의 시한폭탄과 같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 금융기관을 FATCA 미이행 금융사로 분류하면 미국 원천소득(이자·배당)의 30%를 원천징수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한국인 ‘불법 복수국적자’ 10만명 넘을듯

☞미신고 복수국적 얼마나되나


한국 국민이 후천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후 한국 법무부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 복수 국적자’가 지난 2005년 이후 8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인이 해외 이민지로 선호하는 캐나다와 호주 등에서 시민권을 획득한 후 한국에 신고하지 않은 사람을 감안하면 불법 복수 국적자는 1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같은 수치상의 차이는 부실한 외교부의 해외 이주자 현황보다 더욱 심각한 것으로 한국 법무부는 이 같은 사실조차 확인하고 있지 못하는 형편이다.



11일 한국 법무부와 미국 국무부의 한국 국적상실자 현황과 한국에서 귀화한 시민들의 현황을 비교한 결과 2005년 이후 미국에서 시민권을 획득해 귀화한 사람과 한국 법무부에 미국 시민권 획득으로 인한 국적상실을 신고한 사람 사이에 8만2,754명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미국에서 시민권을 획득한 후 한국 법무부에 해외 국적 취득 사실과 이에 따른 국적상실 신고를 해야 함에도 한국 법무부에 이를 신고하지 않아 이 같은 차이가 벌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05년의 경우 미국 국무부는 한국인으로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 귀화한 자로 1만9,223명을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법무부는 당시 8,129명만이 미국 시민권 취득에 따른 국적상실 신고를 마쳤다고 공개했다. 물론 2005년에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후 다음 해인 2006년도에 대사관과 영사관 등을 통해 국적상실 신고를 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수치상의 차이는 2005년 이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2006년의 경우 한국 국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은 1만7,668명에 달한 가운데 한국 법무부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7,633명에 대해 국적상실 신고를 받았다. 결국 2006년 한 해 동안만도 무려 1만35명의 한국인이 스스로 ‘불법 복수 국적자’의 신분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2010년 이후 스스로 선택한 ‘불법 복수 국적자’는 감소세를 보이지만 2,200명 이상 선은 유지하고 있다. 2010년의 경우 2,199명 △2011년은 3,104명 △2012년은 3,990명 △2013년은 5,851명 △2014년은 3,426명 △2015년은 4,432명 △2016년은 2,272명 △2017년은 2,996명에 이른다.

☞국적상실 신고 안하면 알 길 없어

현행 국적법 15조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진해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16조는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자는 법무부 장관에게 국적상실 신고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국적법이 해외 국적 취득자의 자진 신고에 의존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어길 경우에 대한 벌금 조항도 두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신고 안해도 과태료 5만원이 고작

법무부는 후천적 해외 국가 시민권 취득으로 인한 한국 국적상실 신고는 오로지 자진 신고에만 의존하고 있어 전 세계 국가에 산재한 ‘불법 복수 국적자’의 규모를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자진해 외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 한국 국적이 자동 상실되지만 외국인 신분으로 생활기반 또한 주로 해외에 있어 법 적용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면서 “국적상실 신고를 1개월 이내에 하지 않게 되면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5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국적상실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5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가 유일한 강제 수단인 셈이다.

국적상실 상담 전문인 오형진 행정사는 “해외 국가의 시민권을 획득하면 그때부터는 복수 국적이 아니라 한국 국적이 상실되는 데도 불구하고 한국 여권을 사용하다 적발된 사람들은 국적상실 신고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만약 한국에서 취업을 하면 불법 취업이 되고, 한국 운전면허로 운전을 하면 무면허 운전이 되는 등 문제가 커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탐사기획팀=김상용기자 kimi@sedaily.com

김상용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