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黎明]청와대에 레드팀을 두라

고광본 선임기자

최악 시나리오·부작용 미리 분석

오류 고치는 기법 기업서도 확산

소주성 등 파열음 멈추게 하려면

역발상 대안 찾는 '레드팀' 필요

고광본 선임기자고광본 선임기자



‘제1차 오일쇼크’를 불러온 지난 1973년 10월의 제4차 이스라엘·중동전쟁. 1967년 제3차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기습으로 시나이반도(이집트)와 골란고원(시리아) 등을 잃은 중동의 역공으로 시작된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처음으로 개전 초기에 혹독한 패배를 맛본다. 이스라엘 지도부는 사전에 전쟁 징후 보고를 받고도 ‘라마단(금식) 기간에 그럴 리 없다’든지 ‘제2차·3차 전쟁처럼 선제공격하면 미국의 지원을 받기 힘들 수도 있다’고 오판한다. 결국 미국의 지원으로 전세를 뒤집었지만 2,500여명 사망 등 1만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이후 오일쇼크에 따른 물가폭등에 시달린다.

이를 교훈 삼아 이스라엘 총리실과 군은 기존 주류의 생각에 반기를 드는 레드(red)팀을 운영하고 있다. 제3자의 시각에서 고정관념이나 획일화된 사고·확증편향에서 벗어나 혁신적 접근을 하도록 돕는다. 레드팀은 블루(blue)팀의 정책 결정을 앞두고 최악의 시나리오나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분석한다. 심지어 의심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조차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며 오류를 제거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위기관리를 통해 국가의 생존과 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미국도 ‘설마 설마…’하다 당한 2001년 9·11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가 수렁에 빠지기도 했는데 9·11을 계기로 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활발히 레드팀을 가동하고 있다.

실상 레드팀이라는 말은 19세기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 군대가 전투계획을 추진할 때 적의 역할을 맡은 팀에서 유래됐다. 전략·전술의 오류와 결함으로 패하기 전에 역지사지를 통해 객관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다. 가톨릭에서 성인(聖人)을 정할 때 ‘악마의 변호인’을 둬 후보 지명에 이의를 제기하는 임무를 맡기는 것과 비슷하다.


요즘 기업들에도 레드팀이 적지 않게 확산되고 있다. 아마존·구글·도요타 등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최적의 경영판단을 위해 레드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모두가 예(아니)라고 할 때 아니(예)라고 할 수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좋다. Yes도 No도 소신 있게”라는 약 20년 전 한 증권사의 광고 카피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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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 재벌기업에도 레드팀이 존재했다면 위기관리 능력이 한층 더 강화됐을 것이다. 예를 들어 16분기 연속 적자를 보며 평택 스마트폰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기로 한 LG전자의 경우 ‘10년 전 스마트폰이 한국에 상륙했을 때 잘 나가던 피처폰 신화에 도취하지 않았더라면…’, 세계경영을 표방하며 30여년 전부터 동유럽과 동남아·중앙아시아 등을 휘젓던 대우그룹이 ‘환란(換亂) 위기 당시 부채경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났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레드팀을 뒀거나 그에 준하는 의사결정을 하는 국가나 기업은 흥성(興盛)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망쇠(亡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영컨설턴트인 브라이스 호프먼은 “가장 뛰어난 답을 얻는 리더의 비밀은 레드팀에 있다. 생각하지 못한 해결책과 혁신을 만들어내는 레드팀을 두라”고 조언한다. 역발상을 통해 정책 청사진의 허점을 파고들어 플랜B와 플랜C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공정경제·혁신성장이라는 3박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파열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청와대에 레드팀이 없는 것과 무관치 않다. 비생산적인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레드팀의 쓴소리가 부담스럽다면 파란색과 붉은색을 섞어 나오는 퍼플(purple·보라색)팀을 운영하는 것도 괜찮다. 레드팀이든 퍼플팀이든 전략적 마인드를 갖춘 인재들이 허심탄회하게 소통해 대안을 내도록 하고 리더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고 했다. 레드팀이나 퍼플팀이 답이다.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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