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금융정책

'대못 규제'에…한국 떠나는 외국銀

경기 불황에 IB 줄고 수익성 악화

맥쿼리銀·인도해외銀 철수 나서

정부 국제금융허브 추진 '헛구호'




우리나라를 국제금융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야심 찬 구상과 달리 올 들어 한국 사업을 접는 외국계 은행이 또 나왔다. 국내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대기업을 상대로 한 투자은행(IB) 업무가 축소된데다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17년 골드만삭스의 지점 폐쇄(인가 기준)를 시작으로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빌바오비스카야(BBVA)·바클레이스·UBS 은행부문 등이 잇따라 문을 닫으며 촉발됐던 외국계 은행의 ‘엑소더스’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오는 26일 정례회의에서 호주계 글로벌 IB인 맥쿼리은행의 서울지점 폐쇄 안건을 의결한다. 맥쿼리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호주 본사 차원에서 증권과 은행 업무를 통합하는 사업구조 개편작업을 벌이면서 지점 폐쇄를 준비해왔다. 맥쿼리은행은 지점 폐쇄를 위한 사전 조치로 12일 금융당국에 그동안 겸업해왔던 증권업 라이선스를 반납했다. 은행에서 맡아온 증권 업무는 맥쿼리증권으로 이관되고 은행이 해왔던 외환(FX) 거래와 원화 대출 등의 서비스는 26일부터 중단된다.


1977년 인도은행 중 최초로 국내에 진출했던 ‘인도해외은행’도 최근 금융당국에 지점 철수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인도해외은행은 지난해 말 본점 기준 총자산이 385억달러(약 46조원)로 인도 현지에 3,300여개의 지점을 보유한 6위권 은행이다. 중앙정부가 지분 80%를 가진 국책은행이지만 영업 형태는 민간은행과 유사하다. 우리나라가 고속성장을 구가하던 1980~1990년대 본점에서 달러를 저리로 차입해 국내 진출 기업과 인도인을 대상으로 자금을 운용하며 쏠쏠한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저성장·저금리가 고착화하고 금융규제 강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한국 진출 42년 만에 국내 사업을 접게 됐다.

두 은행이 한국 철수를 결정하면서 2017년부터 지속돼온 외국계 은행의 한국 이탈 현상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국내에서 영업 중인 외국계 은행 38곳, 45개 지점의 총자산은 274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4% 늘었다. 하지만 이는 금리하락에 따른 채권평가 이익 증가의 영향으로, 실제 수익구조는 여전히 좋지 않다. 외국계 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예대 업무를 기반으로 하는 일부 중국 및 일본 은행들을 제외하고 본점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미국·유럽 쪽 은행들은 여전히 하루하루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맥쿼리처럼 글로벌 본사 차원에서 결정이 내려지면 언제든지 한국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먹거리 없다”…외국계 지점 5년새 10여곳 떠나

■‘대못 규제’에 짐싸는 외국銀

ELW 등 파생상품 규제에 수익 뚝

서울 국제금융경쟁력 36위로 급락

글로설시장서 韓금융 소외 우려도



“최근 금융의 공공성이 강조되면서 서민·중소기업 지원, 금융소비자 보호 및 사회공헌 확대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수익성 하락이 예상된다.”


국내 대표적인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은 지난달 내놓은 1·4분기 사업보고서에서 현재 국내 금융시장 환경을 이같이 진단했다. SC제일은행은 “은행들이 시장 변화에 맞는 자산운용, 영업전략 차별화 등 경영환경 개선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외국계 은행들은 이런 해법보다는 국내 금융산업의 현주소를 정확히 짚어낸 SC제일은행의 진단에 더욱 동조했다. 한 외국계 은행의 고위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되풀이되고 있는 외국 금융사들의 이탈 원인을 단순히 개별 은행들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며 “외국계 은행들이 한국을 떠나면서 하나같이 규제 때문에 금융시장의 활력이 떨어져 있다고 지적한 점을 당국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골드만삭스를 시작으로 한국에서 철수한 외국 금융회사들은 대부분 미국·유럽계 은행들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업 기회를 찾지 못해 떠나더라도 국내에서 영업하면서 느낀 금융당국의 규제나 감독 경험은 실시간으로 전파된다. 글로벌 은행들이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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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외국계 은행들은 정부가 말로만 ‘금융허브’ ‘금융 중심지’ 등을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외국 금융사들의 국내 진입 여건을 개선하겠다고 할 뿐 실질적인 유인 대책은 없다는 것이다. 가계대출 등 소매금융 시장은 국내 대형 은행들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고 기업대출은 자본시장 발달로 회사채 등 직접 조달 시장에 밀리면서 틈새를 공략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한동안 외국계 은행들의 주요 수익원 노릇을 했던 ‘주식워런트증권(ELW)’ 등 파생상품 판매는 당국의 규제 강화로 사실상 시장이 죽어버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계 은행들의 한국 철수가 잇따랐고 국제금융도시로서 경쟁력을 평가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의 최근 순위에서 서울은 세계 112개 도시 중 36위에 그쳤다. 부산도 같은 기간 24위에서 46위로 급락했다. 정부는 외국 금융사들에 한국으로 오라고 하지만 외국 금융사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할 유인은 거의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 2009년 정부가 서울과 부산을 국제금융중심지로 선정한 뒤 국내에 진출한 외국 은행 지점 수는 반짝 증가했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2011년 53개였던 외국은행의 국내 지점 수는 2013년 56개까지 늘었다가 지난해 45개 수준으로 감소했다.

1015A10 인도해외은행1015A10 인도해외은행


외국계 은행의 수익성도 꾸준히 악화하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에 지점 철수 의사를 밝힌 인도해외은행은 지난해 말 본점 기준 총자산이 385억달러(약 46조원)로 인도 현지에 3,300여개의 지점을 보유한 6위권 은행이다. 하지만 국내 지점의 경우 총자산수익률(ROA)이 2016년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2017년 -5.78%, 2018년 -7.01% 등으로 손실 폭이 확대돼왔다. ROA는 기업의 총자산에서 순이익을 얼마나 냈는지를 가늠하는 지표로 ROA가 높을수록 기업의 수익성과 성장성·효율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1015A10 총자산수익률1015A10 총자산수익률


외국계 은행들은 금융시장 환경이 규제 완화 쪽으로 옮겨 간다면 새로운 먹거리를 찾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현 정권 들어 국내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당국은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가계대출 총량 규제는 물론 대출금리의 일부로 각 은행의 비용과 이익 등을 녹이는 가산금리에 대한 압박도 당연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을 중소기업이나 서민을 지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며 부실 가능성이 큰 중금리대출 출시를 압박하기도 한다. 외국계 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 금융당국은 은행의 역할을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보기보다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조력자로서 공공재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며 “이런 환경에서는 외국계 은행들이 국내에서 새로운 사업을 찾으려는 유인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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