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상처입은 내면아이를 위로하는 따스함

작가

내면아이엔 순수 간직한 빛 있지만

슬픔·어둠의 창고인 그림자도 존재

안부 묻고 다독이며 받아 들일때

우리 안의 정체성은 눈 뜨기 시작

정여울 작가정여울 작가



우리 안에는 죽을 때까지 좀처럼 자라지 않는 내면아이(inner child)가 살고 있다. 이 내면아이는 피터팬처럼 영원한 순수를 간직한 사랑스러운 모습이기도 하고, 상처입은 채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도와달라’는 외침조차 안으로만 삼키는 안타까운 모습이기도 하다. 내면아이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품어안고 있다. 내면아이의 빛은 자기 안의 눈부신 재능과 잠재력,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풍요로운 감수성 같은 것들이다. 피터팬처럼 영원히 철들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해맑은 순수가 내면아이의 빛이다. 이 빛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 마음껏 펼치는 사람이 행복의 열쇠를 쥐고 있다. 내면아이의 그림자는 차별이나 학대, 폭력과 따돌림 같은 트라우마로 얼룩진 슬픔과 어둠의 보물창고다. 이 슬픔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소중한 나 자신의 일부다. 그림자의 존재가 우리를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측면이면서 동시에 내면아이의 빛을 끌어내지 못하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내면아이의 그림자는 내면아이의 빛을 끌어내기 위해 통과해야만 할 마음의 장벽이 될 때도 있다.



‘저 사람은 참 구김살 없어서 좋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의 내면아이가 지닌 해맑은 순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무슨 상처를 입었길래 저토록 슬퍼보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린 그 사람의 내면아이가 지닌 아픈 그림자에 귀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안의 내면아이를 위로하는 최고의 지지자는 바로 우리 자신의 성숙한 측면, 즉 ‘성인자아’다. 성인자아는 우리가 스스로의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에 더 잘 귀기울일 때, 마음의 온갖 천변만화한 움직임에 민감하게 주의를 집중할 때, 더욱 활성화된다. 성인자아는 우리가 감동적인 책을 읽을 때마다, 더 깊고 성숙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때마다, 무럭무럭 자란다. 내면아이가 영원히 철들지 않는 순수라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면, 성인자아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성장과 성숙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증언하는 심리적 실체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의 어린 시절 모습이 바로 ‘내면아이’의 전형이고,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위대한 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미안이 ‘성인자아’의 이상적인 모델이다. 싱클레어로 하여금 자기 안의 내면아이가 지닌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내게 해주는 것은 바로 싱클레어 안에 있는 데미안의 가능성, 즉 성인자아의 무한한 잠재력이다. 나는 ‘데미안’을 읽으며 행복한 예감에 휩싸인다. 언젠가는 데미안처럼 나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치유하고 성장하게 해줄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리라는 아름다운 예감. 그 상서로운 예감이야말로 나의 내면아이를 때로는 다독이고 때로는 힘차게 일으켜 세워 더 성숙한 세계로 이끄는 내적 동력이 된다.


우리 안의 상처입은 내면아이 속에는 온갖 억울함과 안타까움으로 중무장한 채 한 번도 제대로 소리쳐 울어보지 못한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내가 내면아이에 대한 강의를 할 때마다 자주 받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 안의 상처입은 내면아이를 어떻게 위로 하나요” 그 첫 번째 출발은 바로 성인자아가 먼저 다가가 내면아이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이다. 아이 때 부르던 이름이나 별명으로 나 자신을 불러보는 것이다. 내 슬픈 내면아이야, 잘 있니. 혹시나 오늘도 남몰래 울고 있거나, 누군가의 위로를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니. 이렇게 내면아이의 안부를 다정하게 물어봐주고, 그 외로운 등짝을 다독여줄 때, 내면아이는 자기 안의 빛과 그림자를 끌어낼 준비를 시작한다. 빛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까지 함께 받아들일 때, 우리 안의 전체성은 눈을 뜨기 시작한다. 자기 안의 전체성을 통합하여 더 나은 자기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개성화다. 내면아이의 그림자도 빛만큼이나 소중하다. 나는 나의 내면아이에게 이렇게 속삭이며 나를 다독인다. 네 예민한 성격, 네 내성적인 성격이 언젠가는 아름다운 계기를 만나 반드시 너의 재능으로 발휘될 거라고. 지금은 외롭지만 언젠가는 너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따스하고 지혜로운, 진정한 친구가 생길 거라고. 네가 가진 콤플렉스나 트라우마들이 언젠가는 너의 빛, 너의 잠재력, 너의 재능으로 눈부시게 꽃피고 승화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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