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소득주도 성장 같은 경제 담론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당장 경제가 어렵다는데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야죠. 정부의 수출 지원 정책을 적극 뒷받침할 수 있는 중소기업 수출 지원 대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논현동 서울본부세관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김영문 관세청장은 취임 2년여 만에 관세 행정가로 완벽하게 변신해 있었다. 20년 동안 검사 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강골 기질이 인터뷰 중간중간 드러났지만 법률용어보다 고전 경제학 얘기가 입에서 더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김 청장은 “글로벌 경기둔화와 이에 따른 수출 부진 등 앞으로도 녹록지 않은 경제 상황이 계속될 것 같으니 관세청으로서는 수출 지원과 관련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관세청은 기본적으로 정책을 만드는 기관이 아니다”라면서도 “보세(保稅)공장 제도 개편 같은 관세청 행정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2년 전 관세청장이 됐을 때 관세 행정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면서 “내가 관세청에 온 것은 당시 면세점 선정을 둘러싼 조직적 비리 의혹이 불거졌으니 검사 출신이 가서 조직 질서를 바로잡을 게 있으면 바로잡으라는 메시지였다. 지금은 중소기업 수출 지원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기업의 수출 확대를 위해 관세청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분야는 △전자상거래 △보세공장 △면세점 △유용한 통계 제공 등 네 가지다. 그중에서도 전자상거래 활성화는 김 청장이 가장 공을 들이는 영역이다. 김 청장은 “앞으로 전자상거래가 무역의 주된 형태가 될 것이고 우리는 그에 맞춰 준비를 해야 한다”면서 “아마존·알리바바 같은 플랫폼이 필요하고 관세청은 이러한 전자상거래 사이트와 연계해 수출 신고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반 무역을 통한 수출 신고 건수가 2015년 708만건에서 2018년 756만건으로 6.8%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전자상거래 신고는 같은 기간 258만건에서 962만건으로 273% 폭증했다. 김 청장은 “국내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관세청에 무역 신고를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신고되는 전자상거래 전용 신고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업체뿐 아니라 개인도 전자상거래 업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보세공장 제도 개편도 김 청장이 추진하는 역점사업 가운데 하나다. 보세공장 제도는 해외에서 들여온 원자재를 제한된 지역에서 가공해 수출할 경우 관세 등 세금을 부과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 입장에서는 세금으로 내야 할 돈을 운영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어 이득이다. 보세공장 수출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약 29%를 차지하지만 이 제도를 활용하는 중소기업은 전체 중소기업의 0.06%인 56개에 그친다.
김 청장은 “수입물품이 보세구역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게 보세 제도의 본질”이라면서 “보세지역은 제한돼 있어 관리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에 진입요건 등을 대폭 완화해 중소기업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세구역으로 들어오는 양(수입)과 나가는 양(수출)이 기본적으로 통제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지나친 관리가 오히려 수출 활성화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김 청장은 “무역 원활화, 신속통관이 관세청이 추구해야 할 기본가치지만 여기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무역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면세 사업도 수출 확대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김 청장은 “고용창출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면세가 아니면 저가 화장품 같은 제품들은 수출이 어려울 수 있다”면서 “경쟁력이 있을 때 발전시키는 관점으로 면세 산업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면세 사업이 ‘특정 기업 이익 나눠 먹기’라는 시각에 김 청장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면세특허권 허가제를 수정해) 모든 기업이 면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런 시각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면세 사업을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청장은 “지금 한국 면세점 사업이 잘되는 이유는 신뢰”라면서 “한국 면세점을 믿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5~10년 후 중국 현지에 유통업체들이 자리를 잡아도 우리 면세점이 잘될 수 있을까”라고 우려했다.
김 청장은 현행 600달러인 면세한도도 1,000달러까지 올리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 청장은 입국장 면세점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면세는 기본적으로 해외에서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면세한도 상향을 얘기하는 것이다. 김 청장은 “관련 부처가 모여서 결정한 데 대해 따르는 것, 그게 행정의 본질”이라고 했다. 김 청장은 “현재 기본 면세는 600달러지만 술 1병(1ℓ·400달러), 담배 1보루, 향수 60㎖는 별도 면세”라면서 “이렇게 복잡하니 통합해 면세한도를 1,000달러로 올리는 것도 방법이라는 점을 피력했다”고 설명했다. 관세청은 이런 내용을 담아 기획재정부 세제실에 정식 건의서를 제출했다. 기재부는 면세한도 상향 조정을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관세청이 수집하는 각종 무역정보가 국내 기업들의 수출전략 수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청장은 “예컨대 해외 어느 나라가 어떤 제품을 어느 정도 가격에 수입하는지 등의 정보는 우리 기업들의 경영전략 수립에 도움이 된다”면서 “정보를 교환하는 식으로 통계를 수집해 국내 기업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지원 못지않게 관세청의 기본임무인 불법 외환거래나 마약 적발도 소홀함 없이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불법 외환거래 조사 전담조직을 서울세관에 국(局) 단위로 신설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존에는 밀수와 불법 외환거래를 하나의 국에서 관할했는데 이를 따로 떼어내 각각에 역량을 집중하도록 했다. 김 청장은 “카드 사용이 보편화되는 등 금융 산업이 발전하면서 기업들이 비자금을 만들 확률이 상당히 줄었다”면서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비자금이나 상속 재원으로 이용한다면 무역을 활용할 확률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서울세관에서 불법 외환거래 조사를 전담하는 조사2국은 지난해 9월 신설 이후 현재까지 1,925억원 규모의 불법거래를 적발했다. 검찰의 한진가(家) 불법 외환거래 수사에도 관세청이 톡톡히 기여했다. 김 청장은 “불법 외환거래 조사에서 앞으로 성과가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면서 “조사하고 있는 게 많다. (의미 있는) 결과도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최근 급증하는 마약 밀반입에 대해서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마약범죄 수사 부장검사 출신인 김 청장의 전공 분야이기도 하다. 김 청장은 “(마약 밀반입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그는 “모든 나라가 그랬듯 국가가 발전하면 마약은 퍼지기 마련이지만 한국과 일본 정도는 비교적 잘 통제돼온 나라였다”면서 “그런데 최근 들어 적발 건수가 너무 많아졌다”고 우려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6년과 2017년 각각 382건, 429건이던 마약류 반입 적발 건수는 지난해 660건으로 급증했다. 중량 기준으로는 지난해 425㎏으로 1년 만에 5배 늘었다. 올 6월에는 제주국제공항에서 3만명이 흡입할 수 있는 양으로 시가 20억원 규모의 대마초 밀반입 시도가 적발되기도 했다. 김 청장은 “국내 수요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들어오는 것인지, 아니면 공급이 많아 일종의 ‘덤핑’ 식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관세청의 적발 실력이 늘어서 그런 것인지 분석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정리=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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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울산 △1983년 경남고 △1990년 서울대 법학과 △1995년 사법연수원 수료(24기) △2007년 인천지검 부부장 검사 △2009년 대구·수원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장 △2010년 법무부 보호법제과장 △2013년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 △2014년 대구지검 서부지청 형사1부장 △2015년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 △2017년 관세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