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역세권 청년주택 8만호 건설’ 정책에 대해 4선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구청장이 반대 입장을 내놨다. 청년주택난 해소도 중요하지만 노후 대책으로 대학 인근에 원룸을 지은 건물주들의 생계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주택 건설로 인한 파열음이 서울 곳곳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2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생·청년은 원룸에 살도록 하고 결혼한 사람에 한해서 공공주택을 이용할 수 있도록 청년 주택 계획을 바꿔달라고 하는 원룸 소유 주민들의 요구가 일리 있다고 본다”며 “(세대수 중) 70~80% 정도는 결혼한 청년을 위해 행복주택을 지어야 맞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20~30%를 할당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의 역점 사업인 역세권 청년주택 건설은 서울시가 용적률 상향 혜택을 주면 민간사업자가 주거면적 100%를 임대주택으로 지어 청년에게 입주 우선권을 주는 내용이다. 오중석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동대문2)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동대문구에서는 의류업체인 PAT 본사 부지인 휘경동 281-1 일원의 5,663㎡ 부지에 지상 23층 규모의 역세권 청년주택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해당 부지는 지하철 1호선과 경의중앙선 환승역인 회기역과 가깝다. 총 세대수는 682세대다.
역세권 청년주택 계획은 총 세대의 30%는 신혼부부에게, 나머지 70%는 1인가구 청년에게 공급하게 돼 있어 약 500세대는 원룸으로 지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월 임대료는 20만~40만원선으로 주변 시세보다 10만 원 이상 저렴하다. 서울시는 이 부지의 도시계획을 제3종일반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올려 용적률을 500%로 상향했다.
서울시립대 근처의 원룸 소유주로 구성된 ‘휘경2동 PAT부지 대책위원회’ 주민들은 지난 13일 본회의가 열리는 서울시의회 앞에서 집회를 갖고 행복주택 건설에는 찬성하지만 청년주택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책위에 따르면 휘경2동의 원룸 총 1만800실 중 30%는 공실 상태로, 역세권 청년주택이 건설되면 원룸 주인들의 월세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후대책으로 빚을 내 원룸을 지었는데 청년주택이 들어설 경우 큰 타격이 입는다는 것이다. 유 구청장은 “청년주택이 들어설 경우 원룸을 이미 지어놓은 주민들의 생계가 무너질 수 있다”면서 “시에서 (세대수 등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구청장은 박근혜 정부 때 추진됐던 대학 기숙사 건설로 인한 주민 갈등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숙사는 학교 안의 시설이어서 주민들이 반대하기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관에서 나서서 하는 것으로 성격이 다르다”며 “자신들의 생존권이 달려있는 주민들이 반대하면 공사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에 유 구청장은 원룸의 비율을 낮게 설정한 후 서서히 올리는 방식으로 주변 원룸촌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연착륙’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역세권 청년주택을 둘러싼 세대 갈등은 비단 동대문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동구 성내동에서는 지하철 5·8호선 천호역 주변의 청년주택, 영등포구 당산동에서는 지하철 2·5호선 영등포구청역 인근의 청년주택을 두고 집값 하락·월세 수입 감소·대규모 건설로 인한 안전 우려 등을 들어 주민 반대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역세권 청년주택이 민간 사업이므로 비율을 강제로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백윤기 서울시 역세권계획팀장은 “민간이 PAT 부지를 매입해서 짓는 것인데 서울시가 개입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다만 사업주와 주민 간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시가 매개자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