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은 먼 곳에 있는 사람의 소식을 전하기 때문에 기다림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가수 카펜터스는 ‘집배원 아저씨 부탁해요(Please Mister Postman)’라는 노래에서 실제로는 남자친구의 편지를 기다리지만 가사에서는 집배원을 서서 기다리고 이제 가려는 집배원에게 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간청한다. 시인 문정희는 기다림을 넘어 아예 집배원이 되고 싶어한다. ‘가을 우체국’이라는 시에서 그는 ‘가을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시는 ‘은빛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낙엽 위를 달려가/ 조요로운 오후를 깨우고/ 돌아오는 길 산자락에 서서/ 이마에 손을 동그랗게 얹고/ 지는 해를 한참 바라볼 수 있지’라고 노래한다.
이 정도도 시에서나 부릴 수 있는 사치일까. 전국우정노동조합이 집배원 인력 증원을 요구하며 파업을 결의했다. 사상 첫 파업에 나서는 우정노조의 요구사항은 “중노동 과로로 죽어가는 집배원을 살려 달라”는 것이다. 집배원은 올 들어 벌써 9명, 지난해에는 25명이 갑자기 사망했고 우정노조는 이를 과로사로 규정했다. 과로사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사람이 우선이라는 정부가 엉뚱한 데 돈을 펑펑 쓰지 말고 꼭 필요한 곳에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기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