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이 최대 15조원으로 추정됐던 국내 1위 게임업체 넥슨이 매각이 결국 무산됐다. 매각 초기만 해도 중국 텐센트와 미국 월트디즈니, 아마존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가 싶었지만 막상 본입찰 흥행에선 참패했다. 카카오와 넷마블 등 전략적 투자자(SI)를 비롯해 국내외 재무적 투자자(FI)를 포함한 5곳과 가격을 놓고 줄다리기가 이어지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을 좁히지 못한 게 무산의 원인이었다.
2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 매각이 최종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매각 주관사인 UBS와 도이치증권, 모건스탠리는 조만간 각 인수 후보들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할 계획이다.
김정주 NXC 대표는 올해 초 자신과 특수관계인, 개인 회사 와이즈키즈가 보유한 NXC 지분 98.64%를 매각하기로 결정한 뒤 그간 인수 후보를 찾아왔다. NXC는 일본에 상장된 넥슨재팬의 지분 47.98%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넥슨재팬은 넥슨코리아 지분 100%를 들고 있다. 넥슨재팬의 시가총액이 15조원에 달했던 만큼 NXC 인수 가격이 10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었다.
비싼 몸값이었지만 매각 초기만 하더라도 넥슨에 쏠렸던 관심은 뜨거웠다. 특히 넥슨에 연간 1조원 가량의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텐센트가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혔다. 김 대표가 미국 월트디즈니와 아마존을 직접 방문하는 등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미국 게임업체인 일렉트로닉아츠(EA)의 이름도 등장했다. 더욱이 거래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혔던 ‘공개매수조항(텐더오퍼·Tender Offer)’ 이슈가 해소되면서 인수에 들어가는 자금도 대폭 줄었다.
일본에선 30% 이상의 주식을 매입해 최대주주에 오를 경우 나머지 소수지분 주주들에게도 동일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해야 한다. 인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 하지만 넥슨 측이 일본 당국으로부터 대주주(NXC)가 한국법인인 만큼 공개매수조항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받아내면서 소요 자금이 대폭 낮아질 수 있었다.
분위기가 싸늘해진 것은 본입찰에 들어선 뒤다. 당초 예상과 달리 본입찰에 참여한 SI는 국내 기업인 카카오와 넷마블이 전부였다. 넥슨 측이 본입찰 일정을 두 차례에 걸쳐 조정하고 금융사의 투자확약서(LOC) 없이도 참여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것 치고는 초라한 성적표였다. 카카오의 경우 미래에셋과 한국투자금융 등의 손을 잡고 본입찰에 참여했지만 넷마블의 경우 최근까지도 뚜렷하게 투자자를 확정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나마 MBK파트너스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베인캐피탈 등 재무적 투자자가 본입찰에 참여해 넥슨 측과 가격을 놓고 협상을 벌이면서 그나마 실낱같은 매각 가능성이 남아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매각이 무산된 원인은 적정 가격을 놓고 크게 벌어져 있던 인식 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번 매각의 적정 가격을 15조원으로 책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회사인 NXC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지난해 말 기준 3조3,574억원에 달하는데다, 던전앤파이터로만 연간 1조원에 달하는 지식재상권 사용료 등이 있다는 게 넥슨 측이 15조원의 가격을 고집했던 이유다.
문제는 본입찰에 참여했던 인수 후보자들의 생각은 달랐다는 점이다. 특히 넥슨의 IP 사용료가 대부분 중국시장에서 흘러들어오는 만큼 정치적 이슈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큰 데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 질병 코드 도입 등으로 막대한 돈을 들일만큼 넥슨의 가치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넷마블 등 SI가 투자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넥슨 매각이 장기전에 돌입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5G의 상용화와 맞물려 게임산업의 플랫폼화가 속도를 낼 경우 IP 확보차원에서 넥슨의 가치가 다시 오를 수 있는 만큼 당장에 낮은 가격에 매각을 하기 보다는 넥슨이 숨 고르기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