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강제 징용돼 노역에 시달린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다시 한번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1·2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6년이 지나면서 피해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서울고법 민사13부(김용빈 부장판사)는 곽모씨 등 7명이 일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신일철주금이 1인당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곽씨 등 이 사건의 원고들은 태평양전쟁이 벌어진 1942~1945년 신일철주금의 전신인 국책 군수업체 일본제철의 가마이시제철소(이와테현)와 야하타제철소(후쿠오카현) 등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동원에 응하지 않으면 가족들을 파출소로 데려가 무릎을 꿇도록 하는 등의 강압을 견디지 못해 강제로 노동에 종사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한 사건과 사실상 동일한 취지의 소송이다. 앞서 2012년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하자 다른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 2013년 제기한 소송이어서 ‘2차 소송’으로 불린다.
곽씨 등은 2015년 1심에서 “신일철주금이 1억원씩을 배상하라”는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는 앞선 1차 소송의 재상고심 결론이 나올 때까지 판결을 보류했으나 확정판결은 하염없이 미뤄졌다.
확정판결이 이렇게 늦어진 배경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이 소송을 정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정황이 있었다는 사실이 지난해 시작된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결국 1차 소송은 제기된 지 13년 8개월 만인 지난해 10월에야 확정판결이 났다. 4명의 원고 중 살아서 선고를 들은 이는 이춘식(95) 씨 한 명뿐이었다.
1차 소송의 확정판결이 끝난 뒤에야 재개된 이번 2차 소송에서는 항소심 판결조차 단 한 명의 원고도 듣지 못했다. 올해 2월 15일, 원고 중 유일한 생존자이던 이상주 씨가 별세했기 때문이다. 이날 재판부는 선고에 앞서 7명 원고의 이름을 차례로 호명했으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곽씨 등의 소송을 대리한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재판이 늘어지지 않았다면 피해자들이 생존한 상태에서 항소심을 봤을 것이고, 젊은 날의 상처를(보상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9일 ‘한일 기업이 위자료를 부담한다’는 내용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해법을 내놓았지만, 일본 정부가 곧바로 거부 입장을 밝혀 실효성은 미지수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