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기획재정부 내부 게시판에 익명의 글이 올라와 공무원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사무관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에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는데 사무관급이 정책안을 하루아침에 뚝딱 낼 수 있느냐”고 적혀 있었다. 현실과 괴리돼 창의성을 잃어버린 갈라파고스 공무원의 단면을 이 글 하나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사무관의 토로는 다음달 3일 발표되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고스란히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핵심 중 하나는 개별소비세 감면 연장이다. 기재부는 올해 종료 예정인 수소차 개소세 감면을 연장하고 노후경유차에 한해 지원하던 개별소비세 70% 감면 혜택을 휘발유 등 모든 노후차로 확대할 방침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9년 노후차 개소세 인하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정부가 26일 발표한 ‘서비스 산업 혁신 전략’도 7년 전에 내놓은 ‘서비스 산업 차별 완화방안’에서 사실상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7월에도 이번과 유사한 제조업과의 세제·재정·금융지원 차별 완화, 서비스 연구개발(R&D) 확대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처럼 핵심적인 규제혁파는 건드리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는 현실에 대해 전현직 관료들은 민간과의 접촉 자체가 줄어든데다 정치권과 노동계에 휘둘리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 관료는 익명을 전제로 “세종시 이전, 김영란법 등의 영향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져 공무원들이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며 “인터넷 검색으로 정책을 만들 수밖에 없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는 현상도 강해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가로세로 줄을 그어놓고 거기에 맞는 정책만 준비할 정도로 일하는 방식이 획일적”이라며 책상에 앉아 논리만으로 일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현직 고위관계자는 “최근 발표한 제조업 르네상스에도 2030년 제조 4대 강국이라는 공허한 목표만 있을 뿐 실제 내용은 지난해 대책과 유사했다”고 고백했다.
특히 급변하는 산업환경으로 현장을 빠르게 따라잡지 못하는데다 핵심에는 접근도 못하는 문제가 반복된다. 서비스 대책에는 정작 신산업 등장에 따른 승차공유나 의료 부문같이 사회적 갈등이 예상되는 이슈는 빠져 있고 최근 내놓은 2030년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도 노동·환경 규제는 외면하고 뜬구름을 잡는 듯한 비전만 제시해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세종=빈난새·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