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의 경제소사] 잠실 매립 공사 완공.

1978년...공사기간 7년 7일

본지 1971년 2월17일자에 실린 잠실개발 조감도.본지 1971년 2월17일자에 실린 잠실개발 조감도.



1978년 6월28일, 잠실 매립공사가 끝났다. 공사 소요기간은 만 7년 7일. 자고 나면 산하마저 바뀌던 시대에 이만큼 시간을 잡은 공사도 흔치 않다. 왜 그랬을까. 난공사였던 탓이다. 단순한 택지 개발이 아니라 한강 수로의 섬을 통째로 바꾸는 공사에 시간이 걸린 것은 당연지사. 1971년 착공한 이 공사에는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다 달라붙어 공기 단축을 장담했으나 성공한 사례가 없다. 왜? 애당초 한강의 섬인 잠실도 포함해 주변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꾸는 데 공사 구간별로 애로가 많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공사 참여기업은 모두 이익을 얻었다는 점이다.


당연하다. 한강 수로를 바꾸며 매립돼 형성된 새로운 땅의 대부분을 기업들이 차지했으니까. 잠실지구 공유수면 매립으로 얻어진 땅 77만여평은 저가로 공사에 입찰한 기업의 몫으로 돌아갔다. 메워진 땅에는 두 가지가 들어섰다. 공공 목적을 위한 시설과 아파트. 전자는 공공시설, 후자는 아파트다. 무엇이 시간을 이끌었을까. 정부다. 3공화국 정부는 잠실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착공과 함께 시작된 강남 개발이 기업과 일부 개인의 배만 불렸다는 비판을 넘고 싶었다. 잠실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어도 정부는 밀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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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도 논란을 빚었다. 결국 시가의 35%만 인정하겠다는 정부의 강권에 주민들은 손을 들었다. 정부의 힘이 절대적이던 시절, 잠실도에 살던 주민 대부분은 정부 계획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 불과 400여명이 살던 잠실 섬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제3공화국과 유신정권을 계승한 5공 정부는 잠실 지역에서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올림픽을 치렀다. 잠실은 새로운 주거지로 각광받았다. 마침 서울 지하철 2호선의 노선이 순환선으로 변경되며 잠실은 더욱더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의 의사와 어긋난 정부와 서울시의 잠실 개발 계획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 정부는 역내 기업의 법인세 할인을 포함한 세제혜택을 총동원하며 잠실지구를 키웠다. 그 결과는 오늘날 잠실의 번영. 문제는 지속 가능성 여부다. 당장 흙이 내려앉은 싱크홀을 비롯해 안전 문제까지 제기되는 형국이다. 잠실의 원래 물길인 두 줄기 강물로 복원하자는 논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또 하나의 변수가 전망을 흐리게 만든다. 부동산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화가 잠실을 통해 굳어졌다. 대안은 과연 무엇일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송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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