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통계청이 내놓은 ‘5월 산업활동동향’에는 우리 제조업의 공급능력과 경쟁력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증거가 곳곳에 드러났다. 제조업의 적정생산능력은 사상 처음 10개월 연속 감소해 3년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팔리지 못한 채 창고에 쌓이는 재고 비율은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자동차·조선업·석유화학과 같은 전통 주력산업의 부진은 심해지고 반도체 경기 회복세는 더뎌지는 반면 이를 만회하기 위한 과감한 산업 구조조정이나 규제 개혁은 아득한 실정이 그대로 반영됐다. 더욱이 글로벌 경기 둔화와 미중 무역갈등 속에 수출마저 부침을 거듭하고 있어 청와대와 정부가 전망했던 ‘상고하저’ 흐름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경기 동향을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14개월 만에 ‘반짝’ 반등했음에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부실을 보여주는 첫 번째 지표는 제조업 재고율이다. 지난달 제조업의 출하 대비 재고 비율은 118.5%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9월(122.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3개월 연속 상승세다. 그만큼 팔리지 못하고 남아있는 재고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석유정제에서 생산이 감소하고 출하가 줄어든데다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제외한 자동차 재고가 예년보다 더 많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생산능력도 줄고 있다. 기업이 정상적인 조업환경일 때 국내에서 최대로 생산할 수 있는 양을 뜻하는 생산능력지수는 지난달까지 10개월 연속 감소해 101.4까지 떨어졌다. 1971년 이후 가장 긴 내림세다. 2015년 제조업 생산능력을 기준(100)으로 하는 이 지수는 2017~2018년 103 수준을 유지하다 올해 들어 101대로 하락했다. 현재 우리 제조업의 생산능력이 2015~2016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생산능력 하락은 고용·투자 부진에 따른 것”이라며 “경제 규모 대비 너무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있다”고 평가했다.
이렇다 보니 동행지수의 상승 반전이나 소비 지표의 ‘나 홀로 선방’에도 향후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주력 제조업 둔화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생산성 제고나 다른 고부가가치 신산업으로의 구조 전환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장기침체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실물지표의 부진은 전반적인 경기 사이클의 하락과 장기적인 공급능력 감소 때문”이라며 “제조업 생산 능력 저하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시계에서 산업 전반의 기술력을 높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시적인 세제·금융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도 따라잡히고 있는 신산업의 기술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시스템반도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야의 기술력은 중국이 이미 우리나라를 앞질렀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재정을 풀더라도 신산업의 기술력과 인력 양성에 투자하고 그를 위한 제도적인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 경기동향을 반영하는 5월 광공업 생산이 예상을 웃도는 호실적을 기록했다. 국내 수요에 힘입어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생산 등이 호조를 띤 덕분이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이날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5월 광공업 생산지수 예비치는 105.2로 전달보다 2.3%나 상승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0.7%) 훨씬 웃도는 수치다. 업종별로는 15개 가운데 13개 업종이 상승세를 보였다. 자동차 부문은 5.2% 상승해 가장 큰 증가폭을 나타냈고 전기·정보통신 기계공업도 4.4% 상승했다. /세종=빈난새·정순구기자 김민정기자binthere@sedaily.com